
20세기에 들어와서 교회는 예배의 형태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찬양과 경배(praise and worship)”라는 현대적 예배가 그것이다. 기존의 성가대는 찬양팀(worship team)으로 바뀌고, 지휘자는 경배 인도자(worship leader)로 바뀌었다. 찬송가책 대신 OHP나 멀티비전으로 바뀌었다. 오르간, 피아노 등의 악기가 기타, 신디, 드럼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예배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 열정적인 경배를 드리므로 -일어서서 두 손을 높이 들고 노래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찬양하는 성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잡히게 되며, 예배의 의미를 깊이 체험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예배에서는 찬양 중에 거하시는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성도들이 치유와 갱신의 역사를 경험한다.
20세기에 교회가 맞이한 이와 같은 예배의 변화는 몇몇 사람이 모여서 계획하고 만들어 낸 인위적인 변화가 아니다. 성령의 역사와 함께 이루어진 예배의 회복이며 갱신으로서, 일찍이 선지자 아모스가 선포했던 ‘다윗의 장막’ 재건에 관한 예언의 위대한 성취이다(암 9:11~12, 대상 16장).
전에는 많은 교회에서 예배가 메마르고 또 구슬프고 전통적인 노래들을 수백 년 된 찬송가에서 골라서 습관적으로 불렀다. 그러나 오늘날 성령의 역사로 주의 종 다윗의 때와 같이 예배가 회복되었으니 곧 ‘찬양과 경배’라는 현대적 예배이다.

다윗의 장막
찬양과 경배, ‘열린 예배’인가?
기존의 예배 형식을 벗어나 이와 같은 예배가 드려지면 흔히 ‘열린 예배’라고 하는데, 그것은 ‘열린 예배’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모르고 하는 말이다. ‘열린 예배’는 불신자나 초신자를 위해 드리는 미국의 윌로크릭 교회의 ‘구도자 예배(seekr service)’가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문화에 익숙한 자들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문화라는 접촉점을 이용하여 -현대적 음악, 드라마, 토크쇼 등-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로 구도자 예배이다. 이 구도자 예배가 한국교회에 들어오면서 ‘열린 예배’로 이름 붙여진 것이다. 즉 이른바 ‘열린 예배’는 엄연히 타깃이 불신자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찬양과 경배로 드리는 예배는 불신자를 위해 기획된 ‘구도자 예배’가 절대로 아니다. 따라서 ‘찬양과 경배’로 드리는 예배를 ‘열린 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언어의 오용(誤用)이다. ‘찬양과 경배’로 드리는 예배는 ‘열린 예배’가 아니라 그냥 ‘예배’이다.
구태여 이 예배에 특별한 명칭을 붙이자면, 20세기에 이르러 시작된 새로운 양식의 예배이므로 ‘현대 예배(contemporary service)’라고 해야 할 것이다. 흔히 ‘열린 예배’와 ‘현대 예배’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두 가지 예배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은 앞으로 우리가 천국에서 드릴 예배, 그리고 지금 하늘 나라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어떤 예배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예배가 어떤 예배인가? 바로 ‘찬양과 경배’이다(계 5:11~14). 우리는 그 천상의 예배 광경을 ‘열린 예배’라고 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냥 ‘예배’이다. ‘찬양과 경배’로 드려지는 예배는 그것이 천상의 예배이든 지상의 예배이든 그냥 ‘예배’인 것이다.

찬양과 경배의 의미
‘찬양’과 ‘경배’란 하나님을 예배하는 두 가지 단계에 대한 구별되는 용어이다. 첫 번째 단계가 ‘찬양(praise)’이요, 두 번째 단계가 ‘경배(worship)’이다.
시 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예배를 드리는 데에는 ‘문’과 ‘궁정’으로 들어가는 두 가지 단계가 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인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는데, 그때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 그 출발은 하나님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놓으신 역사가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것을 노래하고 선포한다. 여기가 예배의 첫 번째 단계인 ‘찬양(praise)’이다.
그리고나서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씀한다. 궁정에서, 즉 주님의 영광 앞에서 이제는 그분의 인격, 성품, 존재 자체에 대해 경의를 표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가 예배의 두 번째 단계인 ‘경배(worship)’이다.
*찬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어 주셨던 모든 행적과 후의(厚意)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현하는 것.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셨던 놀라운 축복에 대한 진지한 감사를 몸으로서 또 성대로서 표현하는 것.
하나님께 예배할 때 그 출발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놀라운 역사가 무엇인지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배의 첫 번 째 단계로서 ‘찬양(praise)’이다.
*경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하나님이 내 삶에 가운데서 행하시고 이루어 놓으신 일을 노래하고 감사하면서 나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려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그 때는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일보다는 하나님 자신 즉, 하나님 그분을 높이게 된다. 그의 은혜, 사랑, 거룩, 자비하시며 선하신 위엄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것이 ‘경배(worship)’이다.
경배는 찬양의 가장 높은 형태이다. 우리에게 내려 주신 그의 놀라운 축복에 대한 생각들을 훨씬 초월해서 하나님 자신에 대한 그의 인격, 성품, 속성과 완전하심에 우리의 경애와 치하를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행하여 주셨던 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점으로 인해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다.
찬양과 경배의 비교
찬양(praise)이란
*좋게 말함 *경애를 표현함 *칭찬함 *칭송함
*격찬함 *갈채를 보냄 *찬사를 보냄 *축하함
경배(worship)란
*경의를 표함 *경외감을 가짐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 드림
*직위를 드러냄 *경배 드리는 대상 앞에 몸을 낮추어 절함
‘경배’란 여호와 하나님께 말하거나 노래하는 것이다. 그가 행하셨던 일로 인해 노래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그가 어떤 분이신가로 인해서 여호와를 경배함에 들어가는 것이다. ‘경배’는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그분께 대한 존경, 경외감, 경이감과 경애하는 깊은 표현이 영혼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이다.

수직적 찬송과 수평적 찬송
모든 찬송은 가사 내용에 따라 크게 ‘수직적 찬송’과 ‘수평적 찬송’ 두 가지로 구분 된다.
*수직적 찬송: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직접 고백하고 아뢰는 찬송. 즉 하나님께 그 분의 성품, 업적, 베푸신 은혜 등에 대해 칭송하며 감사하고 그 분의 위엄 앞에 경의를 표하는 노래들(Ex. 주의 이름 송축하리, 주의 이름 높이며, 존귀 존귀하신 주, 약할 때 강함 주시네).
‘찬양과 경배’란 바로 이 ‘수직적 찬송’을 의미한다. 진정한 의미의 찬양이란 바로 이 수직적 찬송이다. ‘수직적 찬송’에는 ‘찬양과 경배의 노래’ 외에도 ‘기도와 간구의 노래’도 포함된다(Ex. 주께 내 모든 짐 맡기리, 주의 사랑 주의 능력). 이런 노래의 대상은 명백히 하나님이다.
*수평적 찬송: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과 복음에 관계된 것들이지만, 노래의 대상이 사람인 것들. 다음과 같은 노래들이 있다.
① 신자가 불신자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회개와 영접을 촉구하는 노래들.
② 신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고백하고 간증하는 노래들.
③ 신자가 다른 신자들을 위로, 격려, 권면하는 노래들.
따라서 이러한 노래들은 진정한 의미의 ‘찬송’(할랄)이 아니며, ‘복음성가(Gospel Song)’라고 말해야 한다.

‘찬양과 경배’로 드리는 현대적 예배는 주로 ‘수직적 찬송’으로써 예배하는 것이다. ‘수평적 찬송’도 부르지만 전체적으로는 ‘수직적 찬송’을 부른다. 따라서 주로 ‘수직적 찬송’으로 예배하는 ‘현대 예배(contemporary service)’는 사실상 예배가 더욱 예배다워진 것이며, 예배의 차원이 높아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예배 회복이라고 부른다. 예배가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드리는 일이라면, ‘수직적 찬송’이야말로 예배의 목적에 가장 합당한 찬양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찬송 생활의 문제점
첫째, ‘수직적 찬송’보다 ‘수평적 찬송’이 너무 많다.
둘째, ‘수직적 찬송’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직접 높여드리는
‘경배 찬양’ 보다도 ‘기도와 간구의 노래’가 주류를 이룬다.
즉, 한국교회 안에는 진정한 의미의 찬양이 메말라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집중하기보다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는 노래를 주로 부르면서 주님을 찬송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한국교회 성도들은 예배의 진정한 의미를 체험하지 못한다. 예배의 기쁨과 감격, 그리고 능력도 경험하지 못한다.

현대 예배와 성령의 임재
왜 ‘찬양과 경배’로 드리는 예배에서는 성령의 임재하심과 기름부음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는가? 하나님은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데(시 22:3), ‘수직적 찬송’이야말로 ‘진정한’ 찬송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부흥’은 예배로부터 온다.
이제 하나님의 집에서 이제 메마르고 구슬픈 노래를 그치게 하라! 크신 주님을 찬양케 하라! 높으신 하나님을 경배케 하라! 그리하여 예배 가운데 치유와 갱신의 역사가 일어나고, 모든 회중이 예배할 때마다 신선한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도록 하라!
이 땅에 ‘부흥’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먼저 그분의 교회 안에 ‘예배’를 회복시키고 계신다. 일찍이 찬양과 경배로 다윗의 장막에서 드려졌던 그 위대한 예배를(대상 16장) 이 마지막 때에 다시 일으키고 계신다. 하나님은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다(암 9:11~12). 그리고 다윗의 때와 같이 지금 세계 각처에서 예배가 회복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행하시는 일을 따라가라! 전통에 갇혀있지 말라! 다윗의 장막 예배는 신약 예배의 원형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 포도주를 담는 새 부대가 되기를 원하신다. 악령의 활동이 날이 갈수록 점증하는 세상에서 결국은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큰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유석근목사(알이랑 코리아 대표)
-2003년 1월 24일(금) 예수전도단 워십 컨퍼런스에서 강의했던 원고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