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 윤시내 | 입력 2010.12.14 09:18 |




【서울=뉴시스】이득수 기자 = 경희대학교 음악대학에서는 요즘 교수와 학생 2명에 대한 징계문제가 불거져 법정다툼으로까지 번질 기세다.

새로 선출된 음대학생회 부회장인 B씨와 전 학생회부회장인 C씨에 대한 징계가 12월7일자로 당사자에게 통보됐다. 새 음대학생회장으로 뽑힌 B씨는 '무기정학', 전임 학생회부회장 C씨는 '90일 유기정학'이다.

이보다 한 달여 앞서 결정된 A 교수에 대한 징계는 '1개월 정직'이었다.

 

 

수백 명의 단과대학생 대표로 뽑힌 신임 학생회장에게 무기정학을 내린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증폭시킨다. 시국사건도 아닐 텐데 무슨 엄청난 사건이 있었기에, 그리고 왜 비슷한 시기에 교수와 학생이 징계를 받았는가 하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지난 여름에 무슨 일이?

지난 7월 중순에 알음알음으로 입수한 경희대 음대에 관련된 일련의 문건을 보면, 이번사건이 상당한 배경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경희음대 A교수는 7월초 경기도 과천의 모 중국음식점에서 회식을 마치고 나가기 직전 술자리 합석자 중 한 사람의 머리를 술병으로 내리쳤고, 맞은 사람은 피를 흘리며 기절했다.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간 피해자는 15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었다. 이날 병에 맞아 기절한 사람이 그 중국음식점의 주인이자 경희대 음대에 재학 중인 여학생의 아버지였다.

경희대 음대동창회는 이 사건을 전해 듣고 총장에게 '탄원서'를 냈다. 여기엔 '나름대로' 파악한 술병사건의 전말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회식자리에서 A교수는 더 나아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제자인 여학생에게 "학교 안의 내방으로 놀러 와라, 내 방 문은 잘 안 잠긴다"라는 말과 함께 여학생에게 직접 술을 따르게 하고 독한 '빼갈'을 권해 마시게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여학생의 어머니가 딸에게 그만 네 방으로 올라가라고 해서 내보냈다는 것이다. 그 후 참석자들이 먼저 자리를 뜨고 교수와 아버지 둘만 있다가 나오면서 폭력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A교수는 과천경찰서에 입건돼 조사를 받고 고소당했지만, 재학 중인 딸의 장래를 생각해서 사건이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 학부모와, 고교 동창들의 노력으로 무마됐다는 게 주변인들의 말이다.

◇학생대표, 동창회 탄원서에 '모텔출입설'

동창회의 탄원서는 단순히 술병폭행사건만 거론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7월초 타블로이드 주간지에 게재됐던 A교수와 (여)제자의 모텔 출입을 목격한 제자(음대생)가 있었고, 직접 목격은 못했지만 이러한 일들이 A교수 주변에서 비일비재하다고 주위에서 얘기한다"라는 메가톤급 '비화'도 언급돼 있었다.

그 즈음은 K 국회의원이 Y대 여학생들에게 성추행 발언을 한 사건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던 때여서 더욱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음대 여학생이 남자교수와 모텔에 들어갔다니. 과연 이게 사실일까. 경희대가 발칵 뒤집어진 건 물론이고, 전국의 대학사회 전체를 뒤흔들만한 핵폭탄급 파괴력을 가진 소문이었다.

한편 술병폭행사건은 학교에까지 전해져 문제가 표면화돼 음대 제42대 학생회 부회장과 학회장 명의로 A교수의 실체를 알리고 징계를 요구하는 탄원서도 나왔다. 여기서도 문제의 그 '루머'가 기술돼 있었다. 이들이 묘사한 그 루머의 내용은 이렇다.

작년 9~10월께 경희대 후문 쪽 모텔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성악과 D학생이 "우연히 동료 여학생 2명과 J대 음대교수, 그리고 경희음대 A교수가 함께 있다가 J대 교수는 택시를 타고 떠났고, 남은 A교수와 여학생 두 명이 모텔로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이 소문이 학교 내에 퍼지자 목격자 D씨는 '소문내고 다니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협박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구두에 소주 돌렸다는 '엽기적' 소문도

학생들의 탄원서에는 황당하고 엽기적이라고 할 만한 얘기들도 쓰여 있었다. 2008년 1학기 때 학생들 회식자리에 참석해서는 구두에 소주를 가득 부어 고학년 학생부터 신입생까지 먹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이 일이 언론사에 알려지자 교수는 술을 먹은 학생들을 모두 자기 방으로 불러 별일 아닌 재미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자술서를 쓰라고 강요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돈이 없어 캠프(수련회)에 참가하지 못한 신입생을 무릎 꿀리고는 "왜 참가 안했느냐"고 답변을 강요, 금전적 수치심을 유발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학생들은 "인간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A교수를 고발한다"며 관련 문건을 국회 교과위, 대학 총장실, 부총장실 등에 제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임 학생회부회장이 학생상벌위원회로부터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이유도 탄원서 때문이다. "언론기관 종사자를 포함한 경희언론정보학과 동문들에게 (탄원서를) 이메일로 발송하고, 여학생이 모텔에 출입했다는 사실을 유포해 해당 여학생에게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등으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유기정학을 받은 학생의 '혐의' 내용은 좀 다르다. "동창회와 공동으로 법원에 학교법인 경희학원을 상대로 전임교원임용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 학교로 하여금 재판에 응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 이후에 특별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가처분신청을 취하하는 등 학교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고 학생본분을 이탈한 행동을 했다"는 혐의다. 학생은 학교 측의 징계 사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변호사와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것을 상의하고 있다. 기말 시험을 며칠 앞두고 징계를 내려 결국 교양과목이 펑크나 한 학기 내지 1년을 더 다녀야 할 처지가 됐고, 무기정학을 받은 3학년 신임 부회장은 학생회 활동 자체가 어려울 상황에 처했다. 학생들은 변호사와 법정투쟁을 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 제기 학생들은 무기·유기정학 받아

한편 A교수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러한 일련의 보도 내용과 징계처분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요구에 "이미 지나간 일이고,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가 반론문까지 게재했던 것으로 다 끝난 일이다. 새로 얘기할 게 아무것도 없다. 맘대로 쓰라"고 답변했다.

음악대학만의 고유한 풍토 때문일까. 이 부분에 대해 학생들은 "음대의 실기평가는 교수의 자의적 판단이 작용할 수 있는데, 잘못 보였다가는 성적은 물론이고 취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며 복종하게 되는 매커니즘을 설명했다.

일각에선 교수들 간에 벌어지는 파벌싸움의 한 단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학교 당국은 확실한 사실이 무엇인지를 엄정히 파악해서 사건의 성격을 명백하게 규명하고, 이에 걸맞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게 음대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이다.

leeds@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06호(12월20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분쟁을 해결하는 제3의 길  신광은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1. 철수(가명) 케이스

철수(가명)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철수가 학교에서 친구한테 맞았다는 것이다. 철수 엄마는 처음에는 중학교 2학년 남자 애들이 학교에서 싸우기도 하고 뭐 그런 게 아니겠는가 하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퇴근을 하고 집엘 가서 애 상황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이빨도 부러지고 코피도 나고 머리를 맞아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큰애도 놀라서 "엄마, 쟤 왜 저래?"라고 묻는다. 일단 병원에 입원부터 시켰다. 알고 보니 점심시간에 밥 먹는 줄 때문에 시비가 붙어서 싸움이 났다고 한다. 아빠 없이 혼자서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우리 애가 남의 집 애한테 맞았다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철수 엄마는 혹시나 철수랑 싸운 애는 어찌 되었나 걱정이 되서 알아보니 태산(가명)이는 멀쩡하단다. 철수만 일방적으로 맞은 것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저쪽에서 먼저 사과를 하고 치료비 문제를 협의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철수 엄마는 위자료 따위는 받을 생각도 없었고 그저 병원 치료비랑 이빨 갈아 넣는 것만 해 주면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사실 철수 엄마도 중학교 애들끼리 싸운 일을 키우고 싶지도 않았고, 먹고 살아야겠기에 자꾸 이런 일로 시간을 뺏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태산이네 식구들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병원에 입원한 다음날 태산이 엄마는 병원에 찾아와서는 이빨 값 물어주면 되지 왜 애를 입원시켰느냐며 복도에서 화를 버럭 냈다. 철수 엄마는 "애 상태라도 보고 그런 말을 하시라"고 했지만 "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며 그냥 가 버렸다. 며칠 뒤 선생님하고 태산이 엄마가 다시 병원을 찾아왔다. 그때 철수 엄마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는데, 태산이 엄마는 침상에 누워 있는 철수에게 한다는 말이, "얘, 넌 병원에 편안히 드러누워 있어서 좋겠다. 우리 태산이는 시험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몰라"라고 했다고 한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것이 입원해 있는 애를 보고 가해자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태산이 아빠는 한술 더 떴다. 전화로 왜 병원에 입원을 시켰느냐, 왜 병원에다 맞았다고 말했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너무도 무섭고 분했다.

경찰에 문의를 했더니 2주 정도 시간을 줄 테니 학교 측하고 문제를 잘 풀어 보란다. 그런데 학교 측의 반응은 철수 엄마를 또 한번 황당하게 만들었다. 자초지종을 묻고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학교 측은 때린 태산이보다 도리어 맞은 철수를 더 혼내고 윽박지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철수가 다섯 대 맞았다고 하면 태산이는 한 대밖에 안 때렸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그러면 학교 측은 "야, 야! 쟤가 한 대밖에 안 때렸다잖아. 그럼 세 대 맞았다고 하자." 엄마가 뻔히 보고 있는 데, 이런 식으로 조사를 하는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 교장 선생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했더니 교감 선생님 한다는 말이, "교장 선생님이 무슨 옆집 문방구 아저씬 줄 아십니까? 아무나 만나자고 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해서는 학교 측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을 것인데, 학교 측은 책임지려는 태도는 보이지 않고 무조건 문제를 축소해서 무마시켜 버리려는 생각밖에는 없는 눈치였다. 철수 엄마의 분노는 점점 커져만 갔다.

급기야 태산이네 식구들은 "당신이 고소하면 우리도 고소하겠다"는 식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태산이네 아빠는 태산이가 철수를 때린 주먹이 다쳤다면서 2주 진단을 끊었다고 연락을 해왔다. 세상에! 때린 주먹이 다쳤다고 진단 끊는 일도 다 있는가. 이쯤 되니 철수가 가해자가 될 판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좋다, 한번 해 보자." 결국 철수 엄마는 경찰에 고소를 했다. 변호사도 선임했고, 계약금까지 걸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철수 엄마를 나무라는 것이었다. 경찰은 경찰대로 애들 싸운 것 가지고 고소
까지 하느냐는 식으로 나왔고, 학교 측도 철수랑 철수 엄마를 따가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심지어 식구들도 "이제 그만 하자. 철수 엄마가 참아"라는 식으로 나왔다. 철수 엄마를 대변해 줘야 할 변호사마저 철수 엄마를 보고 참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철수 엄마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자신들은 피해자인데 왜 자신들이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철수 엄마의 억울함과 분노는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인간들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2. 응징할 것인가?

철수 엄마는 분노로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이것들을 요절을 내놓으리라.' 하기야 누군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마음을 먹지 않겠는가. 철수 엄마가 이렇게까지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것은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철수 엄마는 종교인이 아니었지만 여러 종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섭렵하면서 늘 마음 씀씀이를 바르게 가지려고 애쓰며 살아왔던 교양 있는 여인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는 남에게 해코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철수 엄마였다. 그런데 막상 이런 상황을 맞고 보니 교양만 챙기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철수 엄마는 태산이네 집 식구들이 사람처럼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분명 태산이네 집 식구들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싸움은 악마와의 싸움이 되어 갔다. 증오와 분노로 몸서리를 칠수록 태산이네 식구들이 더 무서운 악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혹 사람을 보내서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니 길을 걷는 것조차 무서웠다. 분노와 증오가 공포와 뒤섞이니 거의 공황 상태로 빠지게 되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복수심을 키웠다. 생계를 유지하면서, 아들 상태도 봐 가면서, 복수의 수단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끝까지 가 보자! 태산이 그놈을 기어이 감옥에 보내고 말리라. 사실 태산이보다는 태산이 부모가 더 미웠다. 하지만 어쩌랴. 태산이를 처벌받게 하지 않고는 부모를 응징할 길이 없는데…. 그 집 식구들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해 주기 전에는 싸움을 그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 철수 엄마는 점점 또 다른 악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응징과 복수가 만들어 내는 일종의 거울 효과(mirror effect)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한 관계에 있는 두 당사자는 서로를 악마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악마가 되면 될수록 나는 의롭고 선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은 점차 선과 악의 우주적 전쟁으로, 나아가 정의의 이름으로 사탄을 심판하는 종말론적 심판으로 비화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지난 60년간 남북한의 대결 구도에서 보아 왔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응징의 역설은, 응징을 하면 할수록 양측은 점점 닮아 간다는 것이다. 마치 폭력적인 아버지를 증오하는 아들이 점차 아버지를 닮아 가듯이 말이다. 거울상은 좌우만 바뀔 뿐 똑같은 모습을 비춘다. 마찬가지로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좌우만 바뀔 뿐 똑같아진다. 심지어는 그런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나중에는 서로 의존적이 되고, 공생하는 관계로 비약한다. 응징은 점차 삶을 살아가는 목적이요, 방향이요, 가치요, 힘이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원수 덕분에 살아가는 기이한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적대적 공생 관계는 원한 관계에 있는 둘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남북한의 관계는 대표적인 적대적 공생 관계의 실례이다.

3. 용서할 것인가?

2007년 미국 니켈마인이라는 작은 아미쉬 마을에서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아미쉬 학교에 난입해서 여학생 5명을 죽이고, 여러 명에게 총상을 입힌 뒤 자신도 자살한 끔찍한 사건이 평화롭기만 하던 아미쉬 마을에서 일어났으니 충분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사건이 있은 바로 다음날 피해자 가족과 아미쉬 마을 사람들이 가해자인 찰스 로버트 가족을 찾아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용서한 일이었다. 매체를 통해 보도된 아미쉬 사람들의 용서 사건은 용서의 위대한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 사건이었다. 잘 알다시피 아미쉬는 아나뱁티스트들이다. 그리고 아나뱁티스트는 오랫동안 용서를 생활화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용서를 말할 때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용서는 정의를 폐기 처분하기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용서의 이러한 역설을 잘 보여 준다. 용서가 정의를 대체하면 용서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 준다. 태산이네 식구들로부터 그토록 몰상식한 대우를 받고 있던 철수 엄마에게 누군가 다가가서 "이제 그만 그 사람들을 용서해요"라고 한다면 이것이 옳은 조언일까? 철수 엄마는 어떤 느낌이 들까? 비록 그가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용서'를 말한다고 하더라도 철수 엄마는 그를 분명 태산이네 측에서 보낸 앞잡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특별히 개인 관계보다는 집단적인 차원에서 더 잘 일어난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용서'라는 말을 꺼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 비도덕적 사회>에서 자비나 사랑과 같은 것은 개인 윤리에 속하며, 정의와 평등이 집단 윤리에 속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는 아무래도 인격적인 개인 관계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기업이나 국가 등과 같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는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필자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통찰이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나뱁티스트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용서를 늘 생활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나뱁티스트의 용서에 대해서 배우고자 할 때 그들이 용서를 대단히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용서가 자칫 정의를 폐기 처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용서가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용서와 정의가 조화되는 제3의 길을 찾고자 지난 500년 동안 실험과 실천을 계속해 왔다. 그들의 이러한 이해와 실천은 최근 정의에 대한 제3의 길로 알려지고 있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로 나타나고 있다.

4. 두 가지 정의: 응징하는 정의 vs 회복하는 정의

라인홀드 니버가 착각했던 것이 하나 있다. 그는 정의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정의 vs 자비, 평등 vs 사랑을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이분법적으로 이해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정의란 받은 만큼 돌려주는 응징과 같은 것이었으며, 자비란 피해를 받고도 돌려주지 않으며 참고 용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정의와 자비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된다. 이것이 결국 니버의 대안이 미지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정의와 자비는 둘이 아니며, 하나님은 정신 분열 환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자비의 오른팔과 정의의 왼팔을 가지고 계시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춘다(시 85:10)."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비와 만나는 정의, 용서와 만나는 공의를 찾고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응징하는 정의

가해자가 잘못한 만큼 고통을 안겨 주어서 응징하는 것을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라고 한다. 이러한 응징하는 정의는 한마디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레 24:20)'라고 표현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내 눈을 뽑으면 나도 그의 눈을 뽑고, 그가 내 이를 부러뜨리면 나도 그의 이를 부러뜨리는 것이 정의라는 말이다. 이러한 '동해 보상법'은 구약의 토라뿐만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한 여러 법전의 기본 정신이다. 하지만 응징과 복수가 정녕 정의를 이룰 수 있을까? 글쎄,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

첫째로, 폭력의 문제다. 통상 응징은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007> 시리즈나 <다이하드> 시리즈와 같은 영화를 보면 폭력에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악당의 폭력이고, 또 하나는 지구를 구하는 주인공의 폭력. 하지만 폭력이 지구를 구한다는 구속적 폭력(redemptive violence)은 신화에 불과하다. 자끄 엘륄의 말대로 폭력은 폭력이라는 현실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살인범이 저지른 살인은 끔찍하고 저주스럽다. 하지만 그 살인범을 죽이는 국가의 사형 제도 역시 끔찍하고 저주스럽기는 매한가지이다. 폭력은 정의를 아주 조금 이룰 뿐 온전한 정의를 이루지는 못한다.

둘째로, 르네 지라르가 잘 말했듯이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복수는 너무도 자주 복수의 무한 반복이라는 악순환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그래서 복수는 양심의 가책 없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악마를 만들어 낸다. 복수의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모두가 가해자가 되며, 급기야 모두가 공멸한다.

셋째로, 복수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누가 정당한 심판자가 될 수 있는가? A와 B가 다투었다. 누가 이 두 사람을 중재할 수 있을까? 단순히 제 3자인 C가 중재자를 자청한다면 A와 B가 그의 판단에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중재자는 반드시 초월적인 존재, 곧 신이라야 한다. 때문에 현대 사법 제도에서 중재자는 초개인적인 국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초월성이 사라진 세속 사회에서 국가의 중재는 여전히 의문의 대상이다. 국가란 뭔가? 국가란 그저 다수의 3자들일 뿐이다. 결국 51%의 여론이 유일하고 현실적인 중재자가 되고 만다. 따라서 사법 제도는 정당한 심판자의 부재를 은폐하는 기만이다. 나아가 국가들 간의 분쟁에서 중재자의 문제는 그러한 기만조차 통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남북한의 분쟁에서 누가 공정한 중재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넷째로, 재판의 공정성의 문제다. 오늘날 사법 제도는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고 있는가? 영화 <라쇼몽>이 보여 주듯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의 재판은 부득불 편파적이 된다. 현대 재판 제도에서 공정성은 하나의 전제일 뿐 성취될 수 없다. 예컨대, 한국 검찰의 불공정성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O. J. 심슨 사건이 보여 주듯이 미국 재판 제도의 불공정성 역시 악명 높다. 불행히도 이러한 불공정한 재판은 현실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대로 현대의 재판 제도는 힘 있는 자의 자기 정당화로 변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섯째, 소외의 문제다. 현대의 형법 제도의 특징은 개인의 복수를 국가가 가져간다는 데 있다. 예컨대, 철수가 태산이를 고발하면, 그때부터는 국가가 철수의 복수를 대신하게 된다. 그래서 경찰이 조사하고, 검찰이 기소해서, 법원이 판단한다. 국가가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다는 말이다. 점차 최초의 문제는 철수와 태산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자신의 문제가 된다. 영화 <귀주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재판 절차가 진행이 되면서 태산이와 철수는 자신들의 문제가 점차 자신의 손에서 떠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재판 비용을 대기 위해서 둘 다 막대한 돈을 법률 전문가들에게 지불하는 것이다. 우습게도 법률 전문가들이 두 사람의 분쟁과 불행으로 돈을 벌어간다. 정의는 사라지고 점차 이해관계와 사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여섯째, 응징하는 정의는 관계의 회복을 이룰 수 없다. 철수가 태산이를 고발해서 재판을 받게 하면 아마 모르긴 해도 태산이는 법이 정한 대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일정 부분 정의가 실현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두 집안은 영영 철천지원수가 되고 말 것이다. 두 사람은 물론이고 두 집안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악화된다.

일곱째, 응징하는 정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으로 하여금 뉘우치게 하거나 행실을 바로 잡지 못한다. 통상 사람들은 단호한 응징만이 재발 방지를 약속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예컨대, 태산이가 실형을 선고받는다고 해서 태산이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칠까? 또 그가 만에 하나 교도소에 들어갔다 해서 다시는 전과 같은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지 않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태산이는 교도소에서 철수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키우며, 복수의 칼을 갈고 나올 것이다. 또 그는 학교(교도소)에서 훨씬 더 정교한 기술과 지식, 방대한 네트워크를 습득해서 졸업(출소)하게 될 것이다. 그는 졸업 후 분명 훨씬 더 지능적이고 흉악한 범죄자로 거듭나 있을 것이다. 정의의 결과치고는 참 슬프다.

2) 회복하는 정의

정의에는 응징하는 정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복하는 정의도 있다. 응징하는 정의의 목표가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 즉 복수가 목표라면 회복하는 정의의 목표는 둘의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에 이르게 하며, 다시는 악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그냥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응징하는 정의와 똑같이 회복하는 정의도 잘못에 대한 대가를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분명 정의(justice)이다. 하지만 회복과 치유, 화해, 평화, 이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둘은 완전히 다르다.

회복하는 정의는 처벌을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회복하는 정의도 분명 처벌을 한다. 하지만 회복하는 정의는 다른 차원의 처벌을 한다. 응징하는 정의의 처벌은 자신의 잘못만큼의 고통을 안겨 줌으로써 균형을 이루려는 것이다. 하지만 회복하는 정의의 처벌은 가해자에게 고통을 안겨 주기보다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끄러움을 '통합적 수치심'이라고 부른다. 이는 자신의 행동으로 생겨난 결과를 직시하게 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피해를 보상하도록 책임을 부여한다. 바로 이때 가해자는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움은 누구를 정죄하는 부끄러움이라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책임을 느끼게 하여 건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회복되도록 하게 만드는 부끄러움이다.

그밖에도 회복하는 정의는 제3자가 나서기는 하지만 문제는 갈등 당사자들끼리 풀게 한다. 당사자들은 그 문제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며 관련 전문가들의 호주머니를 부풀리는 데 그들의 돈을 쓸 필요가 없다. 회복하는 정의는 폭력, 혹은 공권력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대화를 최선의 문제 해결 수단으로 택한다. 결국 둘이 만나서 대화하게 하는 것이다. 회복하는 정의는 피해자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대로 정당하고 공정한 보상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보상은 가급적 가해자의 자발적인 결단으로 말미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회복하는 정의는 둘 사이의 막힌 관계와 쓴 뿌리가 청산되는 것을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회복하는 정의는 과거에 일어난 잘못에 대한 문책보다는 앞으로 그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5. 화해 조정의 길

과연 그러한 일이 가능한가? 다시 철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철수네 사례는 회복하는 정의가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놀라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 경청

분노와 증오, 공포로 얼룩져 정상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던 철수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도움을 주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KAC)에서 평화 조정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며 불쑥 나타난 이들의 출현을 철수 엄마는 신뢰할 수 없었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일까' 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한번 만나자고 하는데 내키지 않았다. 만에 하나 이들이 저쪽에서 보낸 용역들이라면 자기 목숨도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겁부터 났다. 그래서 철수 엄마는 대로변에 있는 커피숍으로 장소를 정했다. 여차하면 대로로 뛰어나가 구조 요청을 할 참이었다.

철수 엄마는 혼자 나갔는데 저쪽에서는 남자가 셋이나 나왔다. 벌써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들은 철수 엄마에게 협상을 하라는 둥, 용서를 하라는 둥, 저쪽 편을 드는 일을 일절 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언이나 충고나 어설픈 위로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 보고는 그냥 듣기만 했다. 철수 엄마로 하여금 말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들어주었다. 들어주는 것, 이것은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해 주지 않던 일이었다. 태산이 부모도, 학교 측도, 경찰도, 변호사도, 그리고 친척도, 누구도 해 주지 않던 일이었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낯선 남자 셋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철수 엄마는 낯선 남자들 앞에서 태산이네 식구들을 향해 온갖 저주와 욕설을 해 가며 푸념을 마구 늘어놓았다. 엉엉 울면서 말이다. 테이블에는 휴지가 산처럼 쌓였다. 세 시간이나 그랬을까. 그런데 이들은 시계도 한번 안 쳐다보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들어주었다. 그러자 아주 조금이지만 철수 엄마의 가슴 한쪽이 시원하게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것이 철수 엄마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냉정과 이성을 되찾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회복하는 정의는 대화의 능력을 신뢰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의 말만큼 천시 여기는 것도 없다. 재판에서 가장 증거 가치가 낮은 것이 사람의 말이다. 물증에 비하면 사람의 말은 바람 같은 것이다. 입에서 떠나 즉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말에 무슨 능력이 있겠는가? 하지만 회복하는 정의는 바로 그 말에 모든 것을 다 건다. 정의란 무엇인가? 말이다. 땅에서부터 부르짖는 아벨의 피의 소리가 정의고, 그 소리를 듣는 것이 공의다. 억압당하는 약자의 목소리가 바로 정의이다. 따라서 회복하는 정의는 약자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말로 자신의 분노와 아픔을 표현하게 한다. 여기서 정의가 시작된다.

2) 만남

몇 차례 조정자들을 만나면서 철수 엄마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제 조정자들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것은 태산이네 식구들을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철수 엄마에게는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이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그들과 한 자리에 마주 앉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코앞에서 본다는 것, 그들과 말을 섞는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싫었다. 하지만 철수 엄마는 조정자들과의 만남을 가지면서 상당한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왠지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 중학교 2학년생에 불과한 태산이를 처벌받게 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일을 키우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두 집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태산이네 식구들도 만남의 자리에 나왔다. 그들은 왜 나왔을까? 화해 조정, 곧 '화해 권고 제도'는 사법부와 연계되어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법원이 재판 과정을 일시 보류하고 화해 조정 프로그램에 사건을 위탁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때문에 화해 조정의 결과는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재판부는 그 결과를 최대한 판결에 반영한다. 만일에 화해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재판은 사법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따라서 태산이네 식구들 편에서도 화해 조정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인 셈이다. 이 점에서 보면 회복하는 정의와 응징하는 정의는 꼭 대립적이지 않다.

껄끄러운 두 집안 식구들이 만남의 자리에 나타났다. 회복적 정의가 추구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이다. 그리고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만남이다. 이런 점에서 두 집안 식구들이 다시 만났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이로써 이미 목표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아직 대화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얼굴을 대하고 만나는 순간 이미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찾아진 것이다.

철수 엄마는 만남의 자리에 나오기 전에 얼마나 긴장하고 초조했는지 모른다. 만남의 장소도 전에 조정자들을 만났을 때처럼 도망치기 알맞은 곳으로 정했다. 그만큼 긴장되고 두렵고 껄끄러운 만남이었다. 하지만 철수 엄마가 태산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철수 엄마는 뭔가에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직 앳된 그 어린 중학생에게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던 것이다. 태산이는 악마가 아니었다. 철수랑 똑같은 어린 학생에 불과했다. 그런 태산이를 처벌받게 하겠다고 광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도리어 악마가 아닌가 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순간 화해의 영이 철수 엄마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은 것이다.

3) 대화

재판에서 판사는 절대 권위를 갖지만, 화해 조정의 경우 조정자는 조력자요, 협력자이다. 조정자는 서로 만나기 싫어하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고, 서로 대화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양측이 서로 대화할 때 조정자는 나서지 않고 잠잠히 들어주고 증인이 되어 준다. 그러다가 자칫 갈등 당사자가 흥분해서 또 다른 폭력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상황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또 조정자는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대화를 할 때 가급적 대화의 방향을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인도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조정자가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거나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 당사자끼리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이고, 자신들끼리 합의해서 문제를 푸는 것이다. 그런 다음 합의된 내용에 양쪽 모두 동의하고, 승인하는 합의문을 만들어 내는 것을 돕는 것이 바로 조정자가 할 역할이다.

보통 대화는 피해자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당한 피해와 고통을 하나씩 토해 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즉 섭섭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철수와 철수 엄마는 그간 자신들이 어떤 물리적, 심리적 고통을 당했는지를 쏟아 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전에 조정자 앞에서 다 했던 얘기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라도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왜냐하면 가해자인 태산이와 태산이 가족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그동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

"그때를 기억하시죠? 태산이 아빠가 제게 전화해서 막 소리 지르고 그러실 때… 그때 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그리고… ." 태산이네 식구들은 철수와 철수 엄마가 하는 얘기를 묵묵히 들었다. 물론 얘기 도중 서로 다른 내용이 나올 때 이에 대해서 바로잡기도 했지만 주로 철수와 철수 엄마가 얘기했고, 태산이네는 들었다. 태산이네 식구들도 철수네 사정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짐작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철수와 철수 엄마의 입에서 직접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이것을 듣는 것은 전혀 다른 체험이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들의 눈물 섞인 이야기를 들으면 가해자들의 마음에는 동정과 공감, 미안함이 생겨난다. 태산이네 식구들도 그랬다. '아, 그랬구나. 그랬겠구나. 그렇게 아팠구나….'

4) 화해

철수네 식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태산이네 식구들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의 입에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바로 이것이었다. 철수랑 철수 엄마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되었을 일인데, 그 말을 안 하니까 약이 오르고,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분이 치밀었던 것이다. 그런데 직접 면전에서 그들의 입으로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이제는 살 것 같았다.

철수 엄마는 백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래. 이제 됐다.' 바로 이 지점이 용서의 지점이다. 용서는 정의를 대체할 수 없다. 정의가 없는 용서는 또 다른 폭력이다. 뉘우침이 없는 '평화 선언'만큼 가증스러운 것도 없다. 그럴 경우 용서는 그 본래의 능력을 잃고,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 주게 된다. 회복하는 정의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말을 직접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게 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그 사과를 받아들임으로써 정의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태산이네 식구들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 본래는 사업을 크게 하시던 분들이었는데 얼마 전 사업이 망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하고 계시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이 일이 터졌고, 또 철수가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니 너무 걱정되고 힘들었다고 했다. 보험으로 처리해 주려고 했는데, 철수 엄마가 사고가 아니라 싸워서 입원했다는 얘기를 하는 바람에 보험 처리도 안 되었다고 했다. 거기다 태산이 아빠 성격이 워낙 불같아서 앞뒤 안 보고 그렇게 말을 해 버리는 일이 많단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했다.

'세상에, 세상에…그랬구나….' 태산이네 식구들도 악마가 아니었다. 그저 삶에 지쳐 힘들어하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그러니 이제 철수 엄마도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구나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앉아 있는 중 2짜리 태산이를 보니 너무 짠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철수 엄마는 진심으로 태산이에게 용서를 빌었다. "태산아, 미안하다."

악마는 없었다. 갈등이 상처를 낳고, 상처가 아픔을 낳고, 아픔이 악마라는 허상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알고 보면 그쪽도 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이웃이요, 형제다. 문제는 바로 그렇게 그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기까지가 힘든 것이다. 회복하는 정의는 이것이 가능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그래서 용서하고 화해하게 한다.

5) 합의

뉘우치고 용서하는 시간이 있은 뒤, 이제 대화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로 넘어가게 된다. 우선 치료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화해가 없는 상태에서 치료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껄끄럽고 역겹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뉘우침과 용서가 있은 뒤 치료비 이야기는 비교적 쉽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돈은 나중 문제다.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갖게 되고, 피해자 역시 가해자의 상황을 배려할 수 있게 되면 돈 얘기는 금방 끝난다. 철수네 케이스도 그랬다. 어렵지 않게 치료비 문제를 해결했고,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액수와 지불 날짜까지 합의했다.

물론 합의에는 태산이가 앞으로는 철수를 때리지 않겠다는 약속도 포함되었다. 철수네 역시 고소를 취하하고 이 문제를 더 이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 합의문은 조정자와 함께 작성되었고 양측이 서명을 해서 법원에 넘겨졌다. 법원은 이를 그대로 판결에 반영했다. 결국 합의를 통해서 태산이는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철수네 역시 원한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참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 것이다.

6) 성숙

실로 꿈같은 일이었다. 사과를 받고, 치료비 문제도 해결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철수 엄마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악마의 탈을 벗어던질 수 있어서 더욱 기뻤다. 그동안 자신이 분노와 증오의 노예가 되어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으면서도 달리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이제 더 이상 복수의 화신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꿈만 같았다. 태산이네 식구들을 생각만 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그러다가도 행여나 그 집 식구들이 또 무슨 계략을 꾸미지는 않았을까 하며 두려워했는데, 이제 그러한 두려움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태산이네 식구들이 약속한 날짜에 치료비를 보내오지 않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내 이럴 줄 알았어. 그 인간들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뭐 이런 식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보류했던 법적 절차를 다시 시작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철수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정자도 없이 직접 태산이네 집에 전화를 했고, 혼자서 태산이네 집을 찾았다. 그리고 치료비 지불이 늦은 이유를 물었고, 여차여차한 사정으로 치료비 지불이 늦었다는 해명을 들었다. 그러자 철수 엄마는 액수도 다시 조정해 주고, 일시불이 어려우면 할부(?)로라도 가능하다며 문제를 풀어 나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결국 태산이네 집 식구들은 약속을 잘 지켜 주었고 모든 문제는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회복하는 정의가 또 하나의 열매를 맺었다. 회복하는 정의는 대화, 조정, 사과, 보상 등을 넘어서 갈등 당사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문제를 풀어 낼 수 있는 자신감, 창조성, 여유, 용기, 관용 등을 얻어 낸다. 이것이 바로 회복하는 정의가 맺어 내는 아름다운 열매다. 이것은 응징하는 정의로는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7) 헌신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철수 엄마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끔찍한 고통으로 지옥 같은 나날을 겪고 있는 데 갑자기 누군가가 불쑥 자신에게 찾아와서 그 모든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철수 엄마는 '로또 복권을 맞은 것 같다'고 말하고 다녔다. 누구보다 조정자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자신의 감사를 받을 분이 그들만은 아닌 것 같았다. 자신에게 엄청난 행운을 안겨다 준 누군가가 또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분은 천사나, 혹은 하나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큰올케가 자기 교회에 가 보자고 초청을 했다. 기독교에는 별 관심이 없던 철수 엄마였는데, 그 순간 철수 엄마는 하나님께 가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철수 엄마가 처음 예배에 참석했을 때, 철수 엄마는 서투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베풀어 주신 은혜에 깊이깊이 감사하는 기도를 올려 드렸다.

물론 조정자들은 모두 크리스천들이었으며, 한국의 아나뱁티스트 크리스천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정 과정에서 일절 전도하지 않았다. 자칫 화해 조정이 어설픈 전도 행위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전도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철수 엄마는 그들의 신실함과 섬김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결국 철수 엄마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들의 섬김과 도움으로 철수 엄마는 크리스천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인도 화해 조정자로 섬기고자 훈련 프로그램을 신청해 놓고 있다. 철수 엄마는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헌신했다.

6. 마치는 글

최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적어도 네 명이 죽고 수십여 명이 다치는 끔찍한 불상사가 일어났다. 국민들은 북한의 도발에 분노할 뿐만 아니라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 하여 정부와 군을 질책하고 있다. 이에 정부와 군은 두 번 다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노라며 무기를 재배치하고, 각종 군사 훈련을 강행하고, 교전 수칙을 재개정하고, 연일 서로를 향해 엄포를 놓고 있다. 한반도에 점점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피해자의 절규, 정부의 단호한 대응, 국민의 악화된 여론, 이 모든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도 똑같이 반응한다면 이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는 십자가의 복음을 맡은 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닌가? 세상의 소금이요, 빛 노릇을 해야 하는 교회라면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의 길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교회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회복적 정의를 진지하게 묵상하는 일일 것이다. 회복적 정의는 개인 간의 분쟁뿐만 아니라 국제 분쟁에도 효과가 있다는 여러 가지 임상 결과들이 있다. 회복하는 정의는 분명 남북한의 분쟁에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낼 것이다. 한국 교회는 갈등과 분쟁이 있는 그 한가운데 서서 성프란시스와 같이 평화의 중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철수네와 태산이네 식구들의 갈등과 분쟁을 평화롭게 조정해 주었던 평화 조정자들과 같이 말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성 프란시스의 기도를 올려 드릴 수 있는 평화 조정자가 필요한 때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문의>

한국 아나뱁티스트 센터: http://www.kac.or.kr 전화: 02-554-9615

평화 조정자 프로그램 담당자 : 이재영 간사

회복적 정의 시민사회 네트워크: http://www.rj.or.kr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둡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 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서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st.Francis-

 

연평도 포격 - 북한 도발사건

 

11월 23일 북한의 해안포 및 곡사포 사격 도발로 서해5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23일 오후 2시 34분쯤 인천 옹진군 연평도와 인근에 떨어진 북한의 포탄으로

섬 일대에서 검은 연기가 오르고 있으며 주택들이 포격에 불타오르고 있다.


불길 속 자주포 위의 海兵 병사를 보며

지난 26일 아침 일간 신문들에는 해병대 병사 한 명이 벌건 불길과

시커먼 연기에 휩싸인  K-9 자주포에 올라타 반격 준비를 하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자주포 바로 오른쪽 옆 두 줄기 화염은 보기만 해도 살이 익을 듯했고

자욱한 연기는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목구멍을 막아버릴 듯했다.

북한 포탄은 자주포 진지 2m․4m․10m 옆에 떨어졌다.

이 군인은 사방으로 튀는 파편과 고막을 찢는 포성 속에서

자주포에 올라 포탄이 날아오는 쪽을 주시하며 대응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것이 군인의 본모습이다. 군말이 필요 없다. 군인은 이래야 하는 것이다.

이런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목숨을 지킨다.

이 한 장의 사진보다 군인의 사명에 육박(肉薄)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이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든든하고 고마우면서도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프다.

이런 군인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하고, 수백 문(門)의 적의 포대에 비해

초라하기만한 우리 진지를 지키는 모습이 애달파서다.

 

해병대 연평부대 임준영(21) 상병은 방탄모 외피가 불에 타는 줄도 모르고 자주포로 대응 사격을 했다.

그는 정신없이 사격을 하는 사이 방탄모 외피에 붙은 불이 철모 턱 끈을 타고 내려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응사(應射)가 끝났을 때는 방탄모 턱 끈과 전투복 목 부위가 까맣게 그을려졌고, 방탄모 외피는 불에 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입술 위 인중은 불에 데어 있었다.

내 목숨이 흔들리는 위험 속에서도 국토를 유린하고 국민을 살상한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해병 장병들,

그들은 고마운 사람이다. 나라라는 것은 군인이 이렇게 자기 본분(本分)을 다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어야

존재 가치가 있는 법이고, 국민은 이런 군인들이 뒤를 걱정하지 않고 적들만 노려볼 수 있도록 그들 가족을

돌볼 줄 알아야 국민으로서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법이다.

 

<2010년 11월 27일(토) 조선일보 31면 사설에서 인용>


 

"퇴직을 앞두고 임대사업을 시작할 요량으로 다세대나 소형 아파트에 입찰할 생각으로 왔습니다. 예상보다 매물도 적은데다 딱히 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고민이네요."(서울 동작구 김모씨)

지난달 30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방법원 경매법정. 입찰 개시 시간을 1시간 30분여 앞둔 오전 10시부터 저렴한 경매물건을 구하려는 투자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부지법에는 전세난으로 소형 면적의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거래가 활발한 영등포구, 강서구, 양천구, 금천구 등 강서지역 일대 부동산 경매가 이뤄지는 곳이다.

투자자들은 법정 안에 마련된 160여개 좌석과 건물 안팎에 마련된 간이의자에 앉아 경매 소개지를 뒤적이며 이날의 경매 전략을 짜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경기회복으로 경매물건 속속 취하

이날 경매법정은 수백명이 몰려들면서 입찰장을 메웠던 지난달과는 달리 다소 한산했다. 주택시장이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아파트와 주택 등 투자자들에게 인기 있는 매물들이 입찰 직전에 속속 취하돼 물건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당초 경매에 부쳐지기로 했던 49건 가운데 6건이 경매취하 및 매각연기를 신청했다. 최초입찰가가 감정가(37억원)의 51%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관심을 모았던 서울 양천구 목동 현대하이페리온 550㎡는 매각이 연기됐고 감정가 4억2000만원 최초입찰가 3억3600만원의 구로구 오류동 동부골든아파트는 경매가 취하됐다.

서울 강남에서 왔다고 밝힌 정모씨(50·여)는 "오늘은 화곡동의 다세대주택 2곳에 입찰신청을 했다"면서 "생각보다 저렴한 매물이 많지 않아 경매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씨는 "불과 2주 전만 해도 안양지방법원에서 새 아파트가 전셋값에 경매로 나와 37명이 한꺼번에 몰리는 등 경매시장이 붐볐다"면서 "경기가 회복세를 타면서 괜찮다 싶은 물건들은 속속 취소가 된다"고 귀띔했다.

■물건 감소로 낙찰가율 크게 올라

개찰을 시작하는 버저가 울리자 법정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개찰과 동시에 매물의 낙찰가가 정해지면서 법정 안은 낙찰자의 함성과 낙찰을 받지 못한 투자자의 아쉬운 표정이 교차했다.

전체 경매 물건 중 대단지 아파트가 단 2건에 불과하다보니 낙찰가율이 치솟았다.

이날 가장 많은 입찰자가 몰린 물건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3가의 양평동6차 현대아파트 84.9㎡. 이 아파트는 모두 16명의 입찰자가 몰리면서 낙찰가율의 93%인 4억1900만원에 낙찰됐다. 2억8800만원에서 입찰을 시작한 강서구 등촌동 우성아파트 77㎡도 감정가(3억6000만원)의 81%인 2억9780만원에 낙찰됐다.

자녀와 함께 경매법정을 찾은 한 주부는 "시험 삼아 최저입찰가보다 1만원 많은 3억6001만원에 입찰했다"면서 "지금 살고 있는 빌라에서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에 내심 기대를 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날 남부지법에는 모두 43건의 물건이 나와 총 13건이 낙찰됐다. 평균 경쟁률은 3.62대 1. 경매 응찰자 수는 47명으로 지난달 30여건의 매물에도 응찰자가 100여명 이상 몰렸던 것과는 분위기가 차분했다.

지지옥션의 강은 팀장은 "주택시장이 상승세로 접어들면 경매보다는 일반 매매시장으로 매물이 이동한다"면서 "상승장이 좀 더 지속이 돼 봐야 알겠지만 취하 건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mjkim@fnnews.com김명지기자

■사진설명=주택경기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경매에 나온 물건이 줄어들면서 경매장을 찾는 투자자들도 감소하고 있다. 지난달(2010년11월) 30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남부지방법원 경매법정에서 입찰자들이 낙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 건강] 평소 3.3.3 양치법을 열심히 지키는 김윤기(38·가명)씨. 그러나 얼마 전부터 구강에 통증을 느껴 치과에 방문한 후 충격을 받았다. 이미 잇몸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였던 것. 스스로 구강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사실상 아무리 칫솔질을 열심히 하더라도 치아와 치아, 치아와 잇몸 사이에 낀 치태를 제거하기 어렵다. 이때 치실을 활용하면 효과적인데, 치실은 칫솔질로 제거하기 어려운 부위의 치태까지 없앨 수 있을 뿐 아니라 입 냄새 제거, 잇몸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만약 치아 사이가 많이 넓어진 상태라면 치간칫솔이 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치아 사이 공간에 맞는 치간칫솔을 선택한다면 치실을 사용할 때보다 더 깨끗하게 프라그를 닦아낼 수 있다. 이 때 치아 사이의 넓이보다 굵은 치간칫솔을 무리하게 사용한다면 오히려 잇몸에 무리를 줄 수 있으니 주의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치실이나 치간칫솔을 사용할 때 아래 앞니의 안쪽 면은 침샘과 가까워 치석이 더 잘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세심하게 닦아야 한다. 가장 안쪽의 어금니 또한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가장 바깥쪽의 어금니에는 칫솔이 닿기 힘들기 때문에 치실이나 치간칫솔을 사용할 때 그 부분까지 닦아주면 확실하게 구강건강을 지킬 수 있다.

연세대 치대 예방치과교실 연구에 따르면 치아 올바른 칫솔질은 2.6년, 6개월에 한번 치과 검진은 2.5년 수명이 늘어나 지속적인 치실 사용은 무려 6.2년의 치아수명을 늘릴 수 있다. 작은 습관으로 돈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잇몸 질환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치실이나 치간칫솔을 사용해야 한다. 처음 사용할 때는 피가 나는 등 쉽지만은 않지만 계속 사용하면 세균이 제거되면서 염증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잇몸과 치아 사이 공간이 큰 사람은 치실로 잇몸 깊숙이 축적된 치태를 제거할 수 있다. 임플란트에 환자의 경우 발치 부위에는 신경이 없어 잇몸에 염증이 생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임플란트 주위염'이라고 하는데, 치실이나 치간칫솔을 사용한다면 임플란트 주위염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아울러 치열이 고르지 않은 환자나 교정기 등의 보철물을 한 환자도 반드시 치실이나 치간칫솔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덧니나 교정기 사이를 아무리 꼼꼼히 양치질 하더라도 이 사이에 교묘히 숨은 프라그를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규봉 기자 ckb@kmib.co.kr>

도움말: 이상복 대한치과의사협회 홍보이사, 임플란티아 신촌점 연세LA치과 전중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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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입력 2010.11.23 00:10 | 수정 2010.11.23 06:40

 



은퇴 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 U.S. news는 퇴직금 규모에 따라 꿈에 그리던 `퇴직 후 노후 생활'을 즐길 수 있는 11곳을 선정했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은 곳

=1위는 니카라과(추천도시;Leon, Granada, and San Juan del Sur)이다. 이곳은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생활비가 매우 저렴하게 든다는 점이다. 특히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집값들은 이미 10년전에 거품이 꺼졌다. 요즘은 그 가격이 매우 현실적으로 책정되어 있어 은퇴 뒤에도 살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생활비까지도 저렴해 일석이조의 지역이다. 지난해부터 니카라과는 외국인들에 대한 정착프로그램을 재정비 해 더욱 살기가 좋아졌다. 이러한 이유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에콰도르(추천도시;Cuenca)이다. 에콰도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 정착장소로 선택하고 있다. 어떤 이는 "에콰도르는 세상에서 살기에 가장 저렴한 곳"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거기다 에콰도르는 외국인들에 호의적이며 날씨 조차 좋다.

3위는 콜롬비아(추천도시;Medellin)이다. 콜롬비아는 세련되고 문화적 풍취가 가득한 나라로 니카라과나 에콰도르 보다는 생활비가 비싸지만 특정지역에서는 부동산 비용이 놀라울 정도로 저렴하다.
4위는 태국(추천도시;Chiang Mai)이다. 이 이국적이고 흥미진진한 나라는 때로는 무척 저렴하고 심지어 평화롭기까지 하다.

 

 

▶경제적 중상층을 위한 곳

=1위는 파나마(추천도시;Las Tablas, Boquete, and Panama City)이다. 파나마시티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사회 인프라가 가장 잘 구축된 곳이다. 그러나 살기에 저렴한 곳은 아니다. 이 나라에 다른 지역들이 생활비가 저렴하기는 하지만 수도와 다른 개발된 지역의 생활비와 부동산 가격이 위 리스트에 파나마를 포함시키기엔 가격이 너무 올랐다.

2위는 우루과이(추천도시;Montevideo)이다. 우루과이는 안전하고 평온하며 표본적인 생활수준을 향유할수 있는 곳이다.

3위는 아르헨티나(추천도시;Buenos Aires and Mendoza)이다. 이 나라 역시 매우 저렴한 지역에 속했으나 최근 생활비가 점점 상승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는 삶을 즐기는데 필요한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다.

4위 벨리즈(추천도시;Ambergris Caye and the Cayo)이다. 벨리즈는 멋진 백사장과 카리브 해에서 가장 좋은 다이빙 장소를 가지고 있다. 이 지역 역시 매우 저렴하진 않지만 다른 카리브 해 섬들 해변가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과 생활비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5위는 말레이시아(추천도시;Kuala Lumpur and Penang)이다. 이곳은 아시아 중 외국인들에 가장 호의적이며 편의성을 지닌 나라이다.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에서 외국인이 법적으로 비교적 쉽게 영구 거주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 중 하나이다.





 

니카라과

▶럭셔리 은퇴 생활을 위한 곳

=1위는 멕시코(추천도시;Puerto Vallarta)이다. 이곳은 멕시코 다운 색깔을 지닌 은퇴 후 옵션 중 하나다. 이 매력적인 도시는 최고의 레스토랑과 클럽이 있고 해변가, 항구, 골프 코스 등이 매우 아름답다.

2위는 프랑스(추천도시;Paris and Languedoc)이다. 프랑스는 최고급의 나라 중 하나이며 지구상에서 멋지게 살 수 있는 곳 중 하나이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공하고 랑게독은 프랑스 시골로 프랑스 삶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지역이다.

orchid@heraldm.com

▶ 은퇴 후 아내와 함께 꼭 가봐야 할 곳!

 
< 조이뉴스24 >

올림픽헌장에는 올림픽운동의 목적이 "인류평화의 유지와 인류애에 공헌"이라고 명문화돼 있다. 스포츠를 통해 개인과 국가간 우호를 증진하고 그에 따르는 경쟁으로 서로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4년마다 올림픽이 열린다.

아시안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는 이런 올림픽헌장에 위배되는 사례가 등장했다. 지난 17일 태권도 여자 47kg급에 출전한 대만의 국민적 스타 양수쥔 선수가 실격패 당하면서 대만에 일고 있는 '혐한(嫌韓)기류'가 그것이다.

 

 

양수쥔은 9-0으로 앞서가던 경기에서 발바닥에 규정을 벗어난 구식 센서를 부착했다는 이유로 실격당했다. 자국의 국민적 스타가 실격패 당하고 주저 앉아 우는 모습에 대만 전체가 분노했는데, 애꿎게도 그 화살을 한국 쪽으로 돌려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다.

양수쥔의 센서에 문제를 제기한 심판위원이 한국계 필리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또 태권도의 종주국이 한국이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일부 대만국민들이 태극기를 불태우는 등 사태가 확산되자 대만 총통까지 나서 한국에 대한 극한 감정 표현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니 분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잠시 시간을 8년 전으로 돌려보면 우리 국민들도 스포츠로 인해 흥분하는 사건이 있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결승 경기에서 한국의 김동성이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으나 심판진의 실격 선언으로 금메달을 놓친 것. 미국 선수 안톤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내려진 석연찮은 판정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오노로 인한 반미 감정이 고조됐고,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8년 전 피해국(?)이 된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대만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사건에는 분명 엄연한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안톤 오노에 대한 비난과 판정에 대한 불만이 커졌던 이유는 김동성의 '잃어버린 금메달'이 오노의 차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수쥔의 실격당한 이번 사건에서 한국이 직접 취한 이득은 아무 것도 없다. 양수쥔이 실격당한 경기의 상대가 한국 선수라든지, 그 종목에 출전한 한국선수가 간접적인 혜택을 받았다면 또 모를까. 양수쥔이 출전한 여자 49kg급은 한국 선수가 출전조차 하지 않은 체급이다. 1992년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국교를 맺기 위해 대만과 국교를 단절했을 때 대만국민들이 느꼈던 배신감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표출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공교롭게도 오노 사건을 상기시키는 일이 22일 또 광저우에서 일어났다. 사이클 남자 개인도로 부문에 출전해 1위로 골인한 한국의 박성백이 상대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금메달을 놓치고 만 것. 대신 2위로 골인한 홍콩의 윙캄포가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중국계로 구성된 심판진들의 홍콩 선수 밀어주기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불과 며칠 사이 한국은 입장이 뒤바뀌었다. '본의 아닌 가해자(?)'에서 '억울한 피해자'까지 된 한국은 이래저래 속상한 상황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지켜보면서 '인류평화의 유지와 인류애에 공헌'한다는 올림픽 정신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관련기사]
[광저우AG]사이클 박성백, '강등'으로 금메달 놓쳐

장하준 새책이 날개 돋친 이유 “시장만능에 지쳤으니까!”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01115220819964

출처 :  [미디어다음] 문화생활 
글쓴이 : 경향신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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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와 불교의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개신교가 불교에 지원되는 국고 사업의 저지와 사찰의 땅 밟기에 나서자 불교계가 발끈하고 있다. 불교계는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라며 개신교의 '훼불 행동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사실상 '최후 통첩'을 한 셈이다.

불교계는 또 정부에 대해 개신교의 훼불 행위에 대해 수수방관하지만 말고 적극 나서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종교 전쟁'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하지만 개신교의 생각은 다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불교계에 과도한 국고를 지원하는 것이 갈등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개신교는 정부와 지자체에 의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개신교와 불교의 갈등이 어느 정도이기에 이러는 것일까. 이른바 '종교 갈등'은 이명박 정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소망교회 장로 출신인 이대통령은 국회의원이나 서울시장 시절부터 '종교색'을 강하게 표출해왔다. 서울시장 때에는 '서울시를 봉헌한다'라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종교관과 국가관을 연결해서 국정을 수행한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표출되었다.

정부 주요 요직에 소망교회를 비롯한 개신교 인사들을 임명하면서 '교회 권력의 정치 세력화를 꾀한다'라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어청수 전 경찰청장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노골적인 종교 차별 언행도 이어졌다. 대중교통 이용 정보 시스템과 국가 지리 정보 유통망 등에 교회와 성당만 표기하고 사찰을 누락하는 등의 사찰 홀대 현상도 빚어졌다.


지난 10월24일 대구 엑스포 1층 컨벤션센터에서 목사와 신도 4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국고 지원 템플스테이 저지를 위한 대구 지역 연합기도회'가 열렸다. ⓒ 대구 서문교회 제공

그동안 정부와 불교계가 갈등하는 형국이었다면 올해 들어서는 갈등 양상이 바뀌고 있다. 정부가 '종교 편향'을 드러내지 않는 대신 개신교계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불교-정부'의 갈등이 '불교-개신교'의 갈등으로 점화되면서 '종교 전쟁'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부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개신교계의 불교계 공격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한편으로는 개신교계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모습이다. 일부 보수 우익 단체들이 불교계 공격에 나서고 있는 것도 주목되는 일이다. 더욱이 영남권에서 촉발된 개신교계와 불교계의 충돌이 서울 지역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개신교계와 불교계 갈등의 진원지는 대구를 비롯한 영남권이다. 영남은 불국사·동화사·해인사·통도사 등이 있어 불교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중 불교계와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 개신교계가 적극 저지에 나서고 있다.

현재 개신교계와 불교계가 부딪치는 것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템플스테이 사업 △대구 팔공산 불교테마공원(초조대장경 역사문화공원) 사업 △KTX 울산역 통도사 부기 △개신교 목회자와 신자들의 땅 밟기 등이다.



봉은사 땅 밟기 동영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찬양인도자학교 관계자들이 봉은사를 찾아 사과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개신교계, 신문 광고 등으로 공세 수위 높여

더 깊숙이 들어가보면 개신교계의 불교계 공격은 두 줄기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국고로 지원되는 불교 관련 사업을 중단하라는 것과 불교의 대표적 사찰을 방문해 일명 '땅 밟기'를 하는 것이다. 국고 지원 사업 중단 요구에는 지역 기독교 단체가 중심이 되고 있다. 대구 지역의 경우 '대구기독교총연합회'(대기총)가 나서고 있으며, 개신교 단체들은 신문 광고 등을 통해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기총은 올해 초 '불교테마공원 조성 방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와 '국고 지원 템플스테이 반대 대책위원회'(위원장 이상민 서문교회 목사)를 구성했다. 땅 밟기는 교단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각 교회 목회자와 신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개신교계의 막강한 힘은 곳곳에서 발휘되고 있다. 지난 6월 대기총 소속 목회자 여섯 명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찾아가 대구 팔공산 불교테마공원의 백지화와 템플스테이 사업에 대한 국고 지원 중단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유장관은 1백85억원의 국고가 지원되는 불교계 템플스테이 사업의 방만한 운영을 지적하고 향후 사업 재조정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이 한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불교계가 발끈했고, 문화부는 유장관이 '국고로 지원되는 불교 사업과 관련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라는 내용은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 개신교계의 국고 지원 불교 사업에 대한 반대 움직임은 거세게 번져나갔다.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등 다섯 개 개신교 단체는 7월14일 주요 일간지에 '종교계는 국민 혈세로 종단 운영 행위를 중단하라'라는 제목의 5단통 광고를 게재했다. 템플스테이 등 불교계에 지원되는 국고 지원을 끊으라는 내용이다. 개신교계는 또 불교계에 지원되는 재정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감사를 촉구했다.

하루 뒤인 7월15일 CBS에 출연한 김범일 대구시장은 "종교적인 문제와 팔공산 자연 훼손 등에 대한 문제 제기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다"라며 팔공산 불교테마공원 조성 사업을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초 대구시와 정부는 이 사업에 1천2백억원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이에 대해 불교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구 동화사가 주축이 된 민족문화수호범불교대책위는 김범일 대구시장에 대해 주민소환 운동을 펼치기로 하는 등 '공원 백지화'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KTX 울산역 '통도사' 부기 문제도 팔공산 불교테마공원과 비슷한 흐름으로 가고 있다. 지난 11월1일 KTX 울산역이 개통되었다. 당초 역 외벽 현판에는 'KTX 울산역(통도사)'로 표기될 예정이었다. '울산광역시 역명선정자문위원회'와 '철도공사 역사명칭심의위원회' 등을 거치면서 투표 끝에 '울산역(통도사)'가 확정되었다. 8월26일 정부 전자관보를 통해서도 공고되었다. 그런데 코레일이 갑자기 입장을 번복했다. 내부 규정을 통해 울산역(통도사)의 외벽 간판에서 '통도사'를 삭제하기로 한 것이다. 불교계는 울산 기독교계의 주장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실제 역명 부기가 결정된 후 울산 기독교계는 시청 앞에서 대규모 반대 집회를 했고, 1인 시위에도 나섰다.

통도사는 10월20일쯤 코레일과 국민권익위원회에 '역명 임의 변경에 대해 바로잡아달라'라고 시정 요청을 한 상태이다. 황충기 통도사 종무팀장은 "코레일은 행정자치부의 (관보) 공고 이후 울산기독교 등 일부 단체의 요구에 의해 그동안 존재하지도 않던 내부 규칙을 만들었다. 공식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된 역명을 자기들 맘대로 바꾸는 것은 비민주적인 행정 행위이다. 옥외 간판에서 '통도사' 표기를 삭제한 코레일의 행위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대구 팔공산 불교테마공원과 KTX 울산역의 '통도사' 부기가 개신교계의 반발에 의해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대기총은 팔공산 테마공원 사업을 백지화시킨 후에는 '템플스테이 국고 중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10월24일 대구 엑스포 1층 컨벤션센터에서는 목사와 신도 4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국고 지원 템플스테이 저지를 위한 대구 지역 연합기도회'를 열었다. 개신교계는 템플스테이 국고 지원 저지를 위해 향후 대구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3백만명 서명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개신교계가 '템플스테이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불교계 '포교 사업'의 하나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전통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실상은 불교 포교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여기에 국고를 지원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정교 분리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상민 국고 지원 템플스테이 반대 대책위원장은 "교회로 따지면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서 기도원을 지어준다는 것과 같다. 만약에 국고를 지원해 대형 교회를 짓겠다고 하면 불교계가 가만히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일부 개신교 목회자와 신도들의 사찰 '땅 밟기'는 불자들을 극도로 자극하고 있다. '땅 밟기'는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여리고성 정복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6일 동안 침묵 속에 기도하면서 여리고성을 밟아, 7일째 되는 날 여리고성이 무너지게 했다는 것이다. 즉, 땅 밟기를 통해 사찰을 '정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서울 봉은사, 대구 동화사, 심지어 미얀마 사찰에까지 찾아가 땅 밟기를 하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는 개신교 소속 찬양인도자학교 교육생들이 대웅전 등에서 불교를 폄훼하는 행위를 했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담당 목사와 교육생들이 봉은사를 찾아가 사과했다. 대구 동화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 진상 조사를 벌이고 있다.

불교계 "타 종교 폄훼 행위 법으로 규제하자"




지난 10월23일 대한민국 종교문화축제 개막식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왼쪽)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광선 목사가 서로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 시사저널 > 취재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대구 중보기도 사역'이라는 카페가 개설되었다. 성공회 대구교회의 한 신부가 개설했고, 대기총 소속의 여러 목회자들이 여기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카페에는 불교를 폄하하는 내용의 글과 프레젠테이션 자료 등이 올라 있었다. 회원 가입은 철저한 검증을 거쳤다. 10월16일의 등업신청방에 올라온 글을 보면 "이 카페의 자료들이 불교계나 무속인들에게 흘러들어갈 경우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라며 비밀을 유지해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카페는 폐쇄된 상태이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11월2일 종교 평화와 갈등 방지를 위해 '종교평화윤리법'(가칭)을 제정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른 종교에 대한 폄훼 행위를 법으로 규제해서 종교 간 갈등을 없애자는 것이다. 하지만 개신교계와 불교계의 갈등의 골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개신교계는 템플스테이 등에 지원하는 국고가 중단될 때까지 불교계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을 태세이다. 반면 불교계는 앞으로 개신교계의 '훼불 행위'에 대해 적극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손안식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공동대표는 "우리나라 인구 통계상 무종교인이 48%에 이른다. 개신교의 행태를 일반인들이 어떻게 보겠는가. 결과적으로 보면 개신교한테도 손해이다. 부디 개신교의 지도자들은 대형 사고가 나기 전에 자중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라고 강조했다.

"종교계 갈등 해소 위해 '종교평화윤리법' 만들어야"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공동대표 혜경 스님





최근 개신교계의 불교계 공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영삼 장로가 대통령일 때 많은 부분에서 훼불 행위가 일어났다. 그때는 조직적이 아니라 개인 성향이 강했다. 그런데 최근 동향을 보면 일부 원리주의 성향의 목사들이 주도해서 선동하는 것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불교계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라며 강경 입장으로 선회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부딪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처럼 원론적으로 대응하면 '제2의 팔레스타인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대응을 자제해왔다. 그렇다고 개신교계가 우리를 계속 공격해 오면 관용과 포용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개신교계에서는 템플스테이 등 국고 지원을 문제 삼고 있다.

템플스테이는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홍보 차원에서 시작했다. 정부가 먼저 조계종에 제안한 것이지 우리가 요구한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정부 예산을 타내려고 한 것처럼 보는 것은 잘못이다.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사찰 재정은 마이너스이지만 국가적 브랜드를 위해 감수하면서 하고 있다. 템플스테이 예산을 공개하라고 하는데, 못할 것도 없다. 그 이전에 현 정부 들어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지원된 예산도 모두 공개해야 한다.

정부의 방관자적인 태도에 불만이 있는 것으로 안다.

정부가 갈등 해소 차원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향후 물리적인 분쟁으로 가지 않게 하려면 '종교평화윤리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상대 종교에 대해 도가 넘는 행위를 하면 처벌해야 한다. 그러면 갈등의 요소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종단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차원에서 '종교 갈등 종식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우리는 이런 것이 가동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당분간은 종교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대화하고 종단 차원에서도 정부에 공식·비공식적으로 '종교 갈등을 위한 해법'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종교계에 지원되는 국고 지원금을 모두 끊어라"
이상민 국고 지원 템플스테이 반대 대책위원장





ⓒ대구 서문교회 제공

팔공산 불교테마공원과 템플스테이 국고 지원을 반대하는 이유는?

정부는 1천2백억원의 국고를 들여 팔공산에 불교테마공원을 조성한다고 했다. 팔공산은 대구 시민들의 산이다. 공청회나 토론회 한 번 없이 불교테마공원을 짓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템플스테이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전국 사찰 1백9곳에 연간 1백85억원의 템플스테이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100% 포교 시설이다. 우리가 조사해보니 템플스테이에 지원된 자금도 제대로 쓰인 것이 아니었다.

국고 지원금이 템플스테이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변호사를 고용해서 사용 내역을 살펴봤는데, 본래의 목적에 사용하지 않은 것이 상당히 많았다.

일부에서는 개신교계와 불교계의 갈등이 '종교 전쟁'을 초래한다고 걱정하고 있다.

팔공산에 1천2백억원을 지원한다고 하기 전에는 모든 종교 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부와 대구시가 종교 간 싸움을 붙였다. 우리가 반대 운동을 하면서 (불교를 향해) 지나친 표현을 한 것은 도의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불교가 '불교 폄훼'라고 하는데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것 같으니까 물타기를 하는 것이다.

정부가 불교계에 대한 국고 지원을 중단할 때까지 불교계를 공격할 것인가?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불교계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계에 지원되는 국고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독교에 지원되는 자금도 포함된다. 우리는 종교적인 대립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라 바로 세우기' 차원이다.

개신교도들의 사찰 '땅 밟기'를 비판하는 여론이 많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 기독교의 교리이다. 우리가 팔공산 불교테마공원이나 템플스테이 국고 지원 등에 대해 반대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문제가 된 CD도 '국고 지원' 반대를 위해서 만든 것이다. (반대 움직임이) 확산되면 자기들이 불리하니까 CD를 공개해 맞불을 놓은 것 같다.

정락인 / freedom@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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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의 어머니 성영자씨는 이제 자녀교육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느 곳에서나 주목받는 성공한 어머니다. 삼남매를 각각 서울대학교 출신 피아니스트, 홍익대학교 미대 출신 뮤직비디오 감독,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서 사랑받는 가수 보아로 길러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개입과 때로는 냉정하리만큼 절제된 지원으로 자녀들을 각 분야의 정상으로 키울 수 있었던 특별한 교육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때 톱스타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는 보아의 어머니 성영자씨, 그녀가 처음으로 털어놓은 다섯 가족의 힘들었던 과거와 행복을 찾기까지의 시간들 그리고 삼남매의 성장 과정.

뼛속까지 시린 경제난, 눈물겨웠던 가족의 꿈

 

성영자씨(55)의 첫인상은 여느 엄마들보다 더 푸근하고 따뜻했다. 내로라하는 톱스타의 엄마로서 어깨에 약간 힘이 들어갈 법도 한데 오히려 소박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매 순간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역시 이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막내딸 보아의 데뷔 10년 만에 진솔하게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TBC(현 KBS)에서 연출 일을 하던 성영자씨의 남편 권재철씨(57)는 큰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방송국을 그만두고 지인의 권고로 잘 알지 못하는 스포츠용품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어두운 비전에 더 이상의 희망을 찾지 못하고 4, 5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이후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목장에서 가축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에 전원주택을 지어 온 가족이 서울에서 이사를 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자녀들에게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은 마음도 컸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실컷 노래도 부르고 새벽이고 한밤중이고 아무 때나 피아노를 칠 수 있었어요. 급기야 노래방 기기를 집에 설치해 세 아이가 실컷 노래하고 춤출 수 있도록 해주었고요. 아마 도시에 살았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죠. 그때까지는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어요."

하지만 이후 예상치 못했던 시련이 찾아왔다. 당시 서른여덟이었던 남편이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지방의회 선거에 나가게 된 것. 하지만 선거는 '전부 아니면 전무'라 했다. 열정을 가지고 도전한 시의원의 꿈은 근소한 표 차이로 접어야 했다. 4년 후 다시 도전 의지를 불태우며 재출마를 했지만 또 낙마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옛말에 선거를 치른 집은 간장도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두 번의 선거 실패로 성영자씨의 가족은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남은 것은 한숨이요, 느는 것은 빚뿐이었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둘째아들 권순욱, 아버지 권재철씨, 큰아들 권순훤, 어머니 성영자씨, 막내딸 보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캄캄하고 막막했던 차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일이 우유 판촉이었어요.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저는 무작정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농장에서부터 3km 이상을 걸어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다녔죠."

혹시 자식들이 우유 배달하는 자신을 볼까봐 일부러 의정부까지 먼 동네를 택한 그녀는 70km 떨어진 곳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며 출근했다. 우유가 가득 담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아파트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영업활동을 하느라 다리는 뻐근해지고 입에서는 단내가 날 정도였다.

"엄마가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그 무렵 첫째는 대학에서 전액 면제 장학생이 되었고 학교에서 들어오는 레슨 아르바이트를 맡으며 스스로 용돈을 해결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고3인 둘째 뒷바라지와 당시 이미 가수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보아를 위해 더욱 열심히 우유 판촉 활동을 했죠."

그런데도 집을 담보로 누적된 빚은 늘어만 갔고 결국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에 이르렀다.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된 가족은 집 아래쪽에 붙어 있던 밭에 작은 창고를 지어 살기 시작했다. 기둥을 세우고 합판을 덧대어 간신히 만든 방 틈새는 신문지나 헌 옷을 이용해 바람을 막았다. 보일러도 없고 전기도 멀리서 끌어와 사용해야 하는 그야말로 움막과 다름없는 초라한 상자 집이었다. 그곳에서 성씨의 가족은 이를 악물고 재기의 꿈을 키웠고 그 결과 세 자녀 권순훤(31), 권순욱(30), 보아(본명 권보아·24)는 자신이 도전한 세계에서 저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눈물의 성공을 거뒀다.

"그 사이 저는 보험설계사 일도 했어요. 다행히 우유 판촉보다 수입이 좋아져서 영업지국의 판매왕에 뽑히기까지 했죠.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큰아들은 대학을 졸업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둘째 아들은 좋아하던 춤을 접고 공부를 시작해 홍익대학교 미대에 입학했어요. 막내딸 보아는 힘들고 어려운 연습생 시절을 이겨낸 후 데뷔해 월드 스타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폭풍 같았던 세월을 겪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엄마의 교육법, 자율식 성과제와 아낌없는 칭찬


성영자씨는 자녀들에게 물고기를 잡아주지 않고 스스로 잡도록 도와주는 것이 엄마로서의 올바른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구속하기보다는 그들의 의견을 먼저 듣고 존중하며 스스로 옳은 길을 선택하도록 했다.

이 시대의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기를 자식에게 강요해서 정작 아이들이 큰 이상을 품었다가도 더 높은 곳으로 가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칫 부모의 구속으로 인해 일탈하는 경우도 다반사이기에 그럴 바에는 아이를 방목하며 키우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공부든, 친구들과의 교제든 아이 스스로 선택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대신 그녀는 아이들에게도 조건을 하나씩 붙였다. 꼭 갖고 싶은 물건이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부모님과의 약속을 먼저 지킨 후에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약속한 점수에서 0.5점만 부족해도 어림없어요. 사주는 사람에 대한 대가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니까요. 다행히 아이들이 잘 따라줬어요. 저녁에는 꼭 9시까지 집에 들어와야 한다고 했고요. 기본적인 틀 안에서 자유를 주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들의 성취욕도 높아지죠."

 5년만에 컴백해 한창 활동중인 막내딸 보아와 함께.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무조건 밀어줬던 것도 성영자씨가 노력한 부분 중 하나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해 스스로 깨닫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모들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아이를 바꾸려고 한다. 자녀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끼려고 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란다.

"아이는 스스로도 충분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잖아요.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밀어주고 도와주면서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아이의 기쁨이 더 커지고 부모의 응원에 부응하기 위해 더 잘하고자 노력할 수 있어요. 아이를 너무 질타하거나 구속하는 것은 아이를 더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없도록 하는 장벽과 같아요."

아낌없는 칭찬도 그녀가 아이들을 키우며 절대 빠뜨리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녀는 칭찬 교육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둘째 아들과 보아는 물론,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큰아들에게도 틈틈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식물이나 동물도 사람이 칭찬의 말을 들려주면 더 잘 자란대요.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어요. 특히 자녀들은 칭찬해줬을 때 부모가 기대한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요. 심지어 잘못을 했을 때도 그것조차 경험이 되어 앞으로 더 성숙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니 무조건 다그치거나 질책해서는 안 돼요."

음악으로 성공한 삼남매의 좌충우돌 성장 과정

성영자씨의 교육법대로 보아네 삼남매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별 탈 없이 잘 자랐다. 큰아들 권순훤은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좋아해 다섯 살 때부터 가르쳤다. 물론 교육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피아노 치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아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기특한 아들은 내로라하는 아이들이 모인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다른 친구들이 한 달에 몇 백만원의 레슨 비용을 투자할 때 그 비용에 1/10 정도밖에 안 되는 20여 만원의 레슨을 받으며 죽기 살기로 연습했다.

"저는 원래 아들이 과학고를 거쳐 카이스트에 들어가기를 원했어요. 남자아이가 피아노를 너무 좋아하니까 처음에는 이상했거든요. 하지만 아들이 피아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곁에서 보면서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됐어요.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네가 단 하루를 살다 죽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해봐라'고 했죠."

그 결과 권순훤은 당당히 서울대학교 음대에 합격했다. 합격자 명단을 확인한 온 가족은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렸고 실제 그 모습은 모 일간신문에 크게 실리기도 했다.

 

"아이들을 방목해서 기르더라도 자기가 가야 할 길에 대한 룰이 정확하게 있더라고요. 무척 놀랐어요. 그때의 기분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정말 감격스럽죠."

둘째 아들 권순욱은 그림 그리기를 굉장히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밤새 만화책 한권을 뚝딱 만들어 다음날 학교에 가져가서 친구들과 돌려보기까지 했다.

"큰아이와 막내의 레슨비가 많이 들잖아요. 보아는 영어에 가야금까지 가르쳤거든요. 그러다 보니 둘째에게는 제가 좀 소홀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혼자 매일 그림을 그리더니 어느 날부터는 춤을 추기 시작하더라고요. 고등학교에서 댄스 경연대회를 한다기에 가족이 다 같이 보러 갔는데 정말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성영자씨는 자신의 교육관대로 아들이 춤을 추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혹시 공부하기 싫어서 춤을 선택했나 하는 생각이 든 적은 있었지만 무대 위에서 멋지게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는 아들을 보면서 '내 아이가 단지 춤으로 끼를 발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춤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터득하고 그 마음을 다스리면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춤이 좋다면 정말 열심히 해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각종 춤 대회에서 1등을 휩쓸어오더라고요. 상금도 많았고요.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하다 보면 또 다른 무언가가 마음에 와 닿아서 잡힐 수도 있으니까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그냥 춤을 추라고 했죠."

그래서 고3 때도 춤을 추라고 내버려뒀다. 물론 대학 입시에는 실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변했다. 갑자기 미대에 가고 싶다며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한 것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성씨는 아들이 선택한 길을 열어주기 위해 생활비를 털어서라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춤만 추다 보니 자기 몸값이 안 나간다며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로서 정말 기뻤어요. 제가 공부하라고 강요하고 구속했으면 탈선의 길로 빠졌을 수도 있는데 스스로 자유 안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한 모습이 대견했고요."

결국 둘째 아들 권순욱은 삼수 끝에 홍익대학교 미대에 합격했다. 일찍이 미술을 시작한 아이들이 입학하기에도 쉽지 않은 곳인데 그는 단 2년의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는 가수 보아의 뮤직비디오는 물론 서인영, 폭시, 서영은, 팝핀 현준, 소리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막내딸 보아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한국, 일본, 미국을 오가며 사랑받고 있는 월드 스타다. 세 살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어린 딸은 둘째 오빠 권순욱을 따라다니며 춤을 추고 배우다가 지역의 한 댄스대회에서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하게 됐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보아를 키우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냈던 곳만 해도 무려 15곳이 넘었다.

"보아는 어릴 때부터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항상 녹화해서 따라 부르고 거기에 나오는 춤까지 다 외웠어요. 또래 아이들보다 유독 튀는 걸 좋아했고요. 멀쩡한 바지를 잘라 핫팬츠를 만들기도 하고 길게 기르던 생머리를 한쪽만 짧은 단발 커트로 잘라서는 귀밑 애교머리까지 늘어뜨리고 나타난 적도 있어요. 그런 스타일은 난생처음 봤어요."

공부에도 관심이 많았던 보아는 초등학교 때 반장과 전교회장을 지냈고 서울 삼육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하기도 했지만 끼를 그대로 살려 남들보다 일찍 연예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너무 일찍 데뷔해 맘고생을 치르는 모습을 보면 엄마로서 울컥하기도 했다.

"제 딸이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여자이고 어린 나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면 지금의 보아도 없었겠죠. 평범하지 못한 부분에는 아쉬움이 많았지만 언젠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떳떳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무조건 밀어줬어요."

처녀 시절 시인을 꿈꿨던 성영자씨는 요즘도 틈틈이 시를 쓴다. 얼마 전 자신의 인생과 교육 이야기를 글로 담아낸 자서전에 이어 기회가 된다면 시집도 출간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아이들만을 위해 살아왔듯이 막내딸 보아가 결혼할 때까지만이라도 엄마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하고자 한다.

"보아가 대학도 가고 서른 살 즈음에는 결혼도 했으면 좋겠어요. 스타라는 타이틀에 얽매이지 말고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 좀 자유롭게 스스로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고요.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잘 판단하겠죠. 저는 그저 아이들의 곁에서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래요."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제공 / 강은호, 성영자 ■참고 서적 / 「황금률」(성영자 저, 비오출판)>

한겨레21 [2010.11.12 제835호]

[기획]
언론의 ‘2014~2015년 폭발’ 호들갑에 관련 학자들은 한결같이 부인…
어색해진 한-중 관계로 관측 정보도 얻지 못해

 

그는 조용하게, 그러나 딱딱하게 말했다. “아무개 기자”라고 인사하자, 한동안 침묵하더니 “그런데요?”라고 되물었다. 통화 자체가 내키지 않는 듯했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간 뒤에야 윤성효 부산대 교수(지구과학교육과)는 불편한 마음을 조금 털어놓았다. “기자들은 ‘관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안 듣고, ‘언제 터진다’는 자극적인 것만 골라 쓴다”고 말했다. 그가 마뜩잖게 여기는 것은 ‘백두산 폭발 임박설’이다. “시기를 특정해 (백두산) 화산의 강한 폭발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라고 윤 교수는 말했다.

 

 

언론에 인용된 학자 “폭발설 말한 적 없어”

» 학자들은 백두산이 활화산이고 언젠가 폭발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폭발할 것인지를 단정하기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그것은 뜻밖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한국 대다수 언론은 윤 교수의 말을 빌려 “2014~2015년께 백두산이 엄청난 규모의 폭발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백두산 폭발 임박설은 인터넷 등에서 빠르게 퍼졌다. 그런데 막상 윤 교수는 그 보도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폭발한 것은 백두산이 아니라 ‘백두산 폭발설’ 그 자체였다.

지난 6월19일 <동아일보>는 ‘백두산 화산 4~5년 뒤 폭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백두산이 2014년이나 2015년경 엄청난 규모의 폭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윤성효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는 최근 기상청이 주최한 ‘백두산 화산 위기와 대응’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같은 날 <조선일보>도 ‘2014년쯤 화산 폭발? 백두산이 심상치 않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윤성효 부산대 교수는 ‘중국 학자들이 2014~2015년 백두산 화산 폭발 가능성을 제시하는 등 백두산이 가까운 장래에 분화할 조짐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고 썼다.

그 뒤에도 관련 보도가 이어졌다. 지난 9월과 10월에는 소방방재청이 백두산의 대규모 폭발을 시뮬레이션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10월7일 <동아일보>는 “북한의 핵실험이 한반도에 대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백두산 화산 폭발’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신영수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을 크게 보도했다. 화산 폭발은 기정사실이 됐고, ‘재앙 시나리오’에 더해 북 핵실험 변수까지 끌어들이며 ‘백두산 폭발 임박설’은 점입가경의 지경에 이르렀다.

국내에는 백두산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화산·지질학자가 없다. 다만 윤 교수가 몇 년 전부터 중국 쪽 관측 자료를 토대로 백두산 연구를 시작했다. 백두산에 대해 윤 교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국내 학자는 없는 셈이다. 그의 발언이 주목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윤 교수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2014~2015년 (백두산) 폭발설은 내가 말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설명하는 정황은 이렇다. 학술회의에 참석한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2014~2015년에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윤 교수가 답했다. “그건 중국 학자의 견해이고, (나에겐) 정확한 자료가 없으므로 답할 수 없습니다. 다만 (화산 활동의) 전조 현상이 있으므로 가까운 미래에 분화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윤 교수는 “이 문답을 언론이 제 입맛대로 써버렸다”고 지적했다. 그가 말한 ‘가까운 미래’란 지질학적 개념이다. 윤 교수는 “100년 이내에 분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수십억 년에 걸친 지각변동을 연구하는 지질학자들에게 수백 년은 정말이지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다. 그렇다면 윤 교수에게 질문한 청중은 ‘2014~2015년 폭발설’을 어디에서 접한 것일까?

학술회의 열흘 전인 6월8일, 한국방송은 <시사기획 KBS 10>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천년의 잠, 깨어나는 백두산’을 방영했다. 백두산 화산 위기를 다뤘다. 여기에 등장한 중국 지질관측 연구원이 말했다. “2002년부터 (백두산) 화산이 불안정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불안정 화산 활동은) 12~13년 주기인 것으로 보고 있다. 2014~2015년에 이런 현상이 다시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관측지’ 중국의 과학 수준 미심쩍어

 
» 지난해 12월15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500km 떨어진 마욘 화산이 폭발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화산활동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REUTERS/ ERIK DE CASTRO

그가 말한 ‘화산의 불안정한 현상’이란 각종 화산활동을 지칭한다. 윤 교수는 “중국 학자들이 말하는 12~13년 주기의 화산활동은 포괄적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지질학자들은 폭발적 분출부터 미세한 진동까지 모두 화산활동으로 분류한다. 결국 중국 연구원이 말한 것은 “2014년에 폭발한다”가 아니라 “2014년에 (2002년 무렵과 비슷한) 불안정한 화산활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중국 학자들이 주목한 ‘불안정한 화산 현상’의 대표적 사례는 잦은 지진이다. 중국 쪽 지진관측소 자료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에 백두산 천지 아래에서 평균 진도 3 정도의 미세한 지진의 발생빈도가 늘었다. 많게는 한 달에 250차례나 일어났다. 대부분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다. 땅 아래 마그마가 이동하면서 생긴다 하여 이를 ‘화산성 지진’이라 하는데, 마그마의 이동은 화산 분출 전에 일어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전문가 가운데는 이런 지진이 화산 분출을 알리는 징후인지 불확실하다고 보는 이도 있다. 조문섭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는 “분명한 ‘팩트’(사실)는 백두산 지역의 빈번한 지진활동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래왔다는 점”이라며 “지진 횟수만으로 당장 화산이 터질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어린 조카 녀석이 인터넷에서 뭔가를 보고 와서는 ‘삼촌, 백두산이 곧 터진대요’ 하고 말하기에,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답해줬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관측 자료를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현재로선 중국이 백두산 연구의 선두주자이긴 한데, 불과 수십 년의 관측 기간과 관측 방법을 볼 때 수년 뒤를 예측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질학계의 관측 주기는 며칠 뒤를 보는 ‘단주기 예측’, 몇 달 뒤를 보는 ‘중주기 예측’, 몇 년 뒤를 보는 ‘장주기 예측’ 등으로 구분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중국의 수준은 단주기와 중주기 사이를 관측하는 정도”라며 “그런 능력으로 몇 년 뒤에 어찌 된다고 말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태경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2014~2015년 (폭발 임박)설은 중국 학자의 관측 결과인데, 사실이라면 국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연구 결과인데도 관련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1999년 백두산 주변에 지진 관측계를 설치했다. 지진 관측계를 많이 설치하면 그만큼 많은 지진을 감지할 수 있다. 중국이 관측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시점과 백두산 일대에 잦은 지진이 발생한 시점이 겹치는 것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중국의 자료조차 오랫동안 축적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관측 개시 10년이 지나지 않아 “화산활동의 주기가 12~13년으로 보인다”고 내다보는 것 역시 미심쩍은 대목이다. 2014년 화산활동이 재개될 것이라는 중국 학자의 관측이 완벽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언젠가는 폭발한다, 그러나…”

 

결국 ‘2014년 백두산 폭발설’은 적어도 서너 단계 이상의 논리적 비약과 과장, 오독과 오해를 거쳐 만들어졌다. 그 주창자로 지목된 국내외 학자 가운데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남는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백두산은 폭발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학자들은 이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윤성효 교수는 “국제 화산학자들이 백두산이 화산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폭발이 (몇 년 내로) 임박했다는 이야기는 과학적 근거가 없지만, 백두산이 활화산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고 말했다. 지질학자들이 말하는 ‘화산활동’ 또는 ‘활화산’ 등의 개념에는 미세 진동 등 모든 종류의 화산 현상이 포함되고, 그들이 관측하는 미래는 수십~수백 년에 걸쳐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백두산은 언젠가 폭발할 것”이라는 진단은 진실에 가깝다.

그러나 언젠가 지구는 초신성에 흡수돼 우주에서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는 우주도 팽창을 중단하고 빅뱅 직전의 원점으로 쪼그라들어 절멸해버릴 것이다. 미래 예측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가치가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그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현재로 보아 정답은 ‘모른다’이다.” 홍태경 교수는 이렇게 표현했다. “백두산이 활화산성 운동을 하고 있고 이게 지속되면 언젠가 폭발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게 10년 뒤일 수도 100년 뒤일 수도 있다.”

예측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화산 분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속적·장기적으로 관측하는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화산성 지진의 증가 △마그마에서 올라온 가스 분출량의 증가 △화산의 지속적 융기 등을 통해 화산 폭발을 예측한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의 경우, 학자들이 이런 방식의 모니터링을 통해 폭발 하루 전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다만 이런 관측으로는 며칠 또는 몇 달 뒤의 화산 분출만 예고할 수 있다. ‘단주기’ 또는 ‘중주기’ 예측이다. 미국·일본 등은 화산 아래 마그마가 다니는 길, 즉 ‘화도’까지 시추해 마그마를 직접 관찰하는 방식을 2003년부터 시도하고 있다. 국제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공동 프로젝트다. 몇 년 뒤를 내다보는 ‘장주기’ 예측을 의도하고 있다.

윤 교수가 지난 6월 학술회의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국제 공조 모니터링’이었다. 하다못해 지진 관측 자료라도 있어야 화산 폭발 가능성에 대해 가타부타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망은 어둡다. 백두산은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에 있다. 북한에는 관측시설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본 등에 지진 관측계를 제공해달라고 북한이 요구한 적이 있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12월이었다. 지진 관측계는 핵실험 등에 쓰일 수 있는 ‘전략시설’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북한이 백두산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한국 또는 일본이 공조할 길이 가로막혔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중국은 (공조 관측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간도 회복론’이 제기되고, 중국 역시 ‘동북공정’을 앞세우면서 백두산 일대는 일종의 영토분쟁 지역이 됐다. “예컨대 일본 지질학자들이 ‘다케시마를 공동 연구하자’고 제안해오면, 그걸 한국 학계가 쉽게 받아들이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최근 한-중 관계가 껄끄러워지면서 이런 상황은 더 굳어지고 있다. 국내에 알려진 백두산 주변 지진 관측 자료는 중국 학자들이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 2008년 이후 갑자기 중국 학자들의 자료 제공이 중단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및 한-중 관계 경색과 시기가 겹친다.

 

남북·중·일·러 공동연구 시급

 

결국 검증할 자료도 없이 중국 학자들의 입만 쳐다보게 생겼는데, 그 절실함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과 같을 수 없다. “중국에서 백두산 일대는 변방에 불과하다. 백두산 화산활동을 (우리처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자연현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기본적인 관측만 실시한다.” 윤 교수는 백두산 화산 관측을 중국에만 맡겨두는 일을 걱정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러시아, 그리고 가능하다면 북한이 동참하는 국제 공동연구가 시급하다고 본다.

여기에 이르러 백두산 화산 폭발 임박설은 지질학이 아니라 정치·외교의 문제로 넘어간다. 홍태경 교수는 “관측과 연구를 하고 싶어도 자료를 얻을 방법이 없다. 민간 차원에서 될 일이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공동연구 협약이라도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두산 천지 아래 마그마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폭발할 것인가? 그 질문은 정부에 돌려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폭발설 뒷받침하는 백두산의 역사·구조·지형

확실한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백두산은 전과를 갖고 있다. 그래서 ‘백두산 폭발설’이 폭발력을 지닌다. 약 1천 년 전, 백두산에서 대규모 화산 분출이 일어났다.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지난 4월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의 강도는 화산폭발지수(VEI) 4급이었다. 1천 년 전 백두산 폭발은 VEI 7급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79년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보다 수십 배 더 강력했다. 이 폭발로 인해 발해가 멸망(926년)했다는 주장도 있다. 논쟁은 진행형이다. 백두산 폭발이 발해 멸망 이후에 일어났다는 반박이 나왔으나, 최근에는 발해 멸망 이전에 또 다른 대폭발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질학자들은 5천 년 전, 2천 년 전에도 대규모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근대의 소규모 분화는 1668년, 1702년, 1903년에 발생했다. 대규모 분출의 1천 년 주기와 소규모 분출의 100년 주기가 만나는 시기가 2010년 무렵이다. 백두산이 이런 주기를 따를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분출의 규모와 성격에 대해서도 밝혀야 할 내용이 많다.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사이언스북스 펴냄) 저자 소원주씨는 “불안정한 화산에 관한 논문은 그 결론이 거의 같다. 화산 폭발의 예측이 ‘현대 과학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라고 썼다.

백두산의 구조도 대폭발설의 근거가 된다. 화산 마그마는 점성이 강한 유문암질 용암과 점성이 약한 현무암질 용암으로 구분된다. 점성이 약하면 느린 속도로 조용히 흘러내린다. 하와이 주변 화산이 대표적이다. 점성이 강하면 하늘 높이 분출하며 폭발한다. 점성이 강한 만큼 각종 가스를 더 많이 품게 되는데, 가스가 팽창해 마그마를 빠져나오는 과정이 폭발로 이어지는 것이다. 백두산 천지 아래에는 두 종류의 마그마가 각각 위치한 ‘마그마 방’이 4개 정도 있다. 이 공간에 마그마가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가 중요하다. 마그마 방이 꽉 차면 압력이 증가한다.

백두산 천지의 물도 가공할 위력을 갖고 있다. 19억5천만㎥에 이르는 천지 물은 1초에 1t씩 퍼내도 60년이 지나야 바닥을 드러내는 규모다. 평상시에는 마그마 등을 냉각시키고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마그마가 천지 물과 바로 맞닿는 순간, 급속히 냉각하면서 폭발로 이어진다. 천지 물이 기체가 되어 분출하고 나면 2차 폭발이 이어진다. 천지 물의 압력에 눌려 있던 더 깊은 지하의 마그마가 다시 한번 솟구쳐 분출하는 것이다.

백두산 주변의 지형도 살펴야 한다. 북·중·러 국경지대는 지각의 판이 맞닿는 곳이다.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지진은 백두산 아래 마그마에도 영향을 준다. 최근에는 북한의 핵실험이 마그마 운동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핵실험과 마그마 운동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주파인 자연 지진의 파동은 멀리 가고, 저주파인 인공 지진의 파동은 그렇지 못하다. 핵실험이 백두산 아래 마그마에 영향을 주려면 (핵실험 장소와 백두산의 거리를 감안할 때) 진도 6 이상의 강도를 가져야 할 텐데, 그 정도 핵실험을 할 능력이 북한엔 없고, 설사 한다 해도 주변 일대가 쑥대밭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에는 100여 개 활화산이 있다. 그러나 ‘폭발임박설’에 대한 호들갑이 일본에는 없다. “일본은 철저히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정책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겸허하고 차분하게 대처한다”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말했다. 무지가 공포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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