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까지 37㎞ 뛰어서 귀가하는 '마라톤 퇴근맨'

파주 선관위 공무원 진장환씨
1주일에 최소 세 번은 실천 꽉 끼는 쫄바지차림 시청 명물로
“대한민국 땅 한바퀴 돌아보자” 1500㎞ 울트라 마라톤 창설

▲ “그냥 워밍업 수준이랍니다.”파주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계장 진장환(50)씨가 지난 달 29일 집까지 37㎞를 뛰어서 퇴근하기 위해 파주시청 정문을 나서고 있다/김건수객원기자
지난달 29일 오후 6시쯤 경기도 파주시청 정문. 쫙 붙는 타이츠 바지와 빨간 상의, 주황색 조끼를 입은 남자가 청사에서 뛰어나왔다. 파주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계장 진장환(50)씨.
 

주위 시선도 아랑곳없이, 초연한 얼굴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은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2동의 집. 일산신도시와 수색을 거쳐 37㎞를 지나왔다. 시계는 밤9시40분을 가리켰다.

“2주 전부터 시작한 뒤 오늘로 네 번째네요. 한 주에 최소 세 번은 합니다. 그래 봤자 ‘워밍업’ 정도죠.”

‘고난의 행군’을 사서 하면서 몸풀기라니. 이유가 있다. 내년 가을, 그가 앞장서서 벌이는 ‘대한민국 일주 울트라 마라톤 1500㎞’를 뛰기 위해서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최장거리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출발해 휴전선 일대와 동·남·서해안을 돌아 출발점으로 오는 코스. 강원도 속초, 부산, 전남 해남(땅끝마을)이 꼭짓점이다. 9월21일 오후 5시에 출발, 10월7일 오후 6시까지 385시간 안에 들어와야 한다.

“뛰고 뛰어도 성이 안 차더군요. 그래서 대한민국 땅 한 바퀴 돌아보자고 했죠.”


 

그는 얼마 전 뜻 맞는 사람들과 모여 대회조직위를 결성했고, 홈페이지(www.kum1500.net)도 열었다. ‘311㎞(대한민국 횡단 거리)이상의 울트라 마라톤 시간 내 완주자’를 조건으로 내걸자 지금까지 26명이 도전장을 냈다. 이 가운데 대한민국 횡단과 해남 땅끝마을~고성 통일전망대(622㎞), 부산 태종대~파주 임진각(537㎞)코스를 모두 뛴 사람만 진씨를 포함해 15명.


 

이 중에도 마라톤에 가장 ‘미친’ 사람은 단연 진씨다. 2000년 첫 하프코스(21.0975㎞) 완주 이후 국토를 세 번 가로질렀다. 제주도 주변 100㎞, 한라산을 돌고 도는 146㎞ 등도 뛰었다. 37㎞의 ‘마라톤 퇴근’과, 주말에 하는 서울 성산대교~광진교 구간 왕복(50㎞) 등 대회를 앞둔 ‘자체 훈련’까지 더하면 지금까지 뛴 거리는 총 4400㎞ 정도. 풀코스(42.195㎞)를 100번 넘게 달린 거리다. 뛰지 않을 때도 다리 근력 유지를 위해 1.5kg짜리 모래주머니를 양 발목에 차고 다닌다.


 

이렇게 뛰니, 특이한 추억도 많다. “2004년 횡단코스 뛸 때 바지가 비에 젖은 적이 있어요. 마침 산속이기에, 한동안 벗고 뛰었죠.”

이야기 도중, 웬 파일들을 꺼내 보여준다. 6개 코스를 뛰며 든 생각들을 담은 일종의 ‘마라톤 일기’. 지금껏 책 6권 분량을 썼다. 달린 코스의 특성과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세세히 적혀 있다.

진씨는 시청에서도 유명인사다. ‘보기 민망할 만큼 꽉 끼는 타이츠 바지’ 입고 퇴근하는 사람은 진 계장뿐이다. 파주시선관위 직원 송진철(39)씨는 “계장님 복장 보고 ‘참 용기 있구나’ 생각했다. 놀랍고 멋지다”고 말했다. “만날 뛰기만 하냐”며 핀잔 주던 아내도, 달리기에 입문해 이젠 10㎞를 너끈히 완주하는 ‘주부 마라토너’가 됐다.


 

진씨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1500㎞ 참가자들과 모여 100㎞ 주파 훈련에 돌입한단다. “그런데, 왜 그렇게 뛰세요?” 불쑥 던진 근원적인 물음에, 대답이 철학적이다. “그 유명한 마라토너가 한 말 있잖아요.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뭐, 딱 그거 아닙니까.”


 

파주=남승우기자 futuris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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