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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듀나(Djuna)djuna01@empal.com | |||
대한민국 땅의 교회 수와 인구의 몇십 퍼센트를 차지하는 기독교인의 머릿수를 생각하면 기독교를 진지하게 다루는 한국 영화가 거의 없다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최근 한국 영화 속의 기독교인은 대부분 우스꽝스러운 조연이죠. <좋지 아니한가>나 <천하장사 마돈나>가 가장 뻔한 경우입니다. 신앙의 그늘 밑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방글방글 웃기만 하는 영혼 없는 인형이거나 교회에 나가는 것만으로 자신의 습관적인 죄가 커버될 거라고 믿는 단순한 위선자인 거죠. 조금 역할이 커지면 <그놈 목소리>처럼 주인공의 현실적인 고통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무력한 종교의 상징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그건 좀 빈약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최근엔 그 숫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민병훈의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무척이나 모범적인 가톨릭 영화면서도 좋은 영화였습니다.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관객에게 도그마를 강요하지 않았고 냉소적인 국외자들 앞에서 민망해하지 않으려고 괜히 쿨한 척하지도 않았죠. <포도나무를 베어라>처럼 내부인의 관점을 유지하지는 않았지만, 신동일의 <방문자>도 기독교를 다룬 좋은 영화였습니다. 물론 많은 신자는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이라고 생각할 테니 이 영화를 기독교 영화로 보고 싶지도 않겠지만, 제가 그 관점까지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죠. 신앙과 현실 세계, 그리고 휴머니즘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전쟁과 대화에 대한 영화의 묘사는 훌륭했고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기독교를 다룬 흥미로운 영화는 바로 이창동의 <밀양>입니다. 원작인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가 그런 것처럼 이 영화 역시 기본적으로는 외부인의 관점을 유지합니다. 정말로 끔찍한 일을 당한 한 여성에게 기독교라는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객관적으로 그려 보이는 것이죠. 시사회 반응을 보니 많은 사람이 이 영화가 기독교를 희화화했다고 걱정하며 구체적인 사례까지 지적하더군요. 읽으면서 참 사람들이 하찮다고 느꼈습니다. <밀양>의 이야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고 그 영화에서 묘사되는 기독교인은 제 주변에 깔렸다시피 한 수많은 기독교인과 특별히 다르지도 않거든요. 그 악의 없는 사람들의 묘사를 희화화라고 걱정한다면 처음부터 종교를 포기하는 게 나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그렇게 거슬린다면 그건 그냥 믿음이 약한 거죠. 오히려 <밀양>은 좋은 기독교 영화가 갖추어야 할 장점이 더 많습니다. 신자의 일상이 이처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종교가 한 사람의 영혼에 남긴 영향력을 그처럼 분명히 그린 한국 영화는 많지 않아요. 열린 결말 역시 충분히 건전한 토론을 끌어낼 수 있을 정도고요. 이 영화엔 실제로 많은 교회와 신자가 내용을 알면서도 참여했는데, 이건 우리나라 기독교가 그렇게까지 근시안적인 종교가 아니라는 증거로 자랑스럽게 내밀어도 됩니다. ![]() 참,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고전 한국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13일 밤에 EBS에서 이범선의 동명 단편 소설을 각색한 김수용의 영화 <피해자>를 방영합니다. 역시 기독교 소재의 영화고 토론 대상으로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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