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정책 모의실험 하자



실록 부동산 정책 40년이 국정브리핑에 게재됐다. 부동산 가격이 왜 올랐는지를 경기부양, 유동성, 공급시차, 부동산 심리와 관련해 잘 설명하고 있다. 실록이란 말에서 조선왕조실록이 떠오른다. 왕조차 볼 수도, 평가할 수도 없는 사실 기록. 그러므로 실록은 홍보 차원보다 사실 확인 차원으로 활용되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어야 한다.

 

‘실록 부동산’에서 정책 실수를 자인한 부분은 신선하다. 개선의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정책 실수를 시인한 것을 너무 비판하는 태도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란 말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끝까지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쉽다. 그러나 반복된 실수는 방치할 수 없다. 피해가 너무 크다.

 

어느 정부인들 쾌적한 주거 환경을 안정된 가격에 공급하고 싶지 않겠는가?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할까? 이론적으로는 정확히 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되게 공급하면 된다. 정확한 수요 예측이 가능한가? 시장의 유동성과 다른 투자 대안의 존재 유무, 공급 물량의 예상치, 전세금을 관찰하면 수요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예측 기법으로서의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본질이 다르다. 조물주의 법칙은 변함없이 미래에도 반복된다. 인간사회를 관찰한 법칙이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다. 아무리 과거 자료를 바탕으로 정확히 예측해도 9·11테러의 결과를 미리 감안하지 못함과 같다. 완전하진 못해도 좀 더 정확한 예측은 할 수 없을까?

 

첫째, 측정치에 대한 정의를 정확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8·31대책 시 주택보급률이 105.9%인 줄 알았는데 1인 가구를 감안하지 않아서 사실은 82.7%였다고 한다. 측정 지표의 정의에 대한 열린 토론의 장이 이런 오류를 줄여 줄 것이다.

 

둘째, 공급 가능한 토지의 계산이 정확해야 한다. ‘실록 부동산’은 개발의 시차를 감안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토지 공급 계획이 미비했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수요와 공급을 파악해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계량적 예측 모델과 데이터베이스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셋째, 국정 모의실험 사회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계량적 예측 모델은 사전에 정해진 인과관계 범위 내에서 예측이 가능하지만 시장 구성원의 돌출 행위를 다 감안하지는 못한다. 경제 구성원의 다양한 상황을 대변할 1000명 정도로 모의실험 사회를 만든 뒤 인터넷상에서 정책을 사전에 실험해 볼 수 있다.

 

주택수요자, 주택공급자 그리고 관련 경제 주체의 상황을 다양하게 반영하는 국정 모의실험자가 각자의 처지에서 유익한 (때에 따라 영악하고 불법적이기까지 한) 대응을 할 때, 새로운 정책의 시행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더 잘 예상할 수 있다. 검증되지 못한 정책을 즉흥적으로 내놓으면 현실 자체가 실험장이 되고 정책의 신뢰를 상실할 위험이 크다. 이런 실험장을 통해 정책의 시행착오를 줄여 가기 바란다.

 

주택 정책은 경제논리와 복지논리가 조화된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돼야 한다. 어느 한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닌 포괄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서민들의 집 없는 서러움을 막겠다고 서민 주택을 많이 지으면 공급 과잉이 되어 집값이 안정되지만, 공급이 부족한 고급주택 값은 올라가 서민의 미래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진다. 경제문제를 복지논리로 접근하면서 발생한 아픈 교훈이다. 10년 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되면 그 시점의 주택 수요를 어찌 주택 공급률로만 평가하겠는가? 장기적인 시각에서 대응해야 한다.

 

이재규 KAIST 경영대학장 겸 테크노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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