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부동산 가상 시나리오
“올해 잔뜩 오른 집값만 생각하면 밤에 잠도 오지 않는단 말이야. 싼 매물이 쏟아질 거라던 정부 말을 믿은 내가 바보지……” 올해 38살의 00물산 홍보팀 최 과장.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온통 부동산 얘기뿐이다. 지난해 10년 무주택자의 설움을 벗고 집장만을 계획했던 그는 8.31 대책 발표와 정부의 말만 믿고 전셋집에 눌러 앉았다. 그러나 정부의 공언과는 반대로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살고 있던 전셋집 보증금마저 크게 올라 올 한 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부터라도 발품을 팔아서 내년에는 꼭 집을 사든지 해야지 원. 이 대리, 아 자네가 우리 회사 부동산 도사 아닌가. 자네는 내년 집값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올해와 같은 급등세가 재현되기는 힘들겠지만 내년에도 집값 상승세는 지속되지 않을까요?" 자타공인 부동산 박사인 이 대리의 집값 전망이 술술 풀어져 나온다. 우선, 요즘 최고의 화젯거리인 반값 아파트 논란이 내년 집값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무리 대선용이라고는 하지만 한 나라의 주택정책을 좌지우지할 방안이 그렇게 쉽게 마련되기는 힘들다는 것. “이미 반값아파트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잖아요. 혹시, 반값아파트가 현실화된다고 해도 큰 메리트가 있을지도 의문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 자기 땅 한 평이라도 소유하고 싶어하는 거 다들 잘 아시잖아요?”
수급 불균형도 집값 안정에는 악재 중 악재라는 전망이다. 내년 서울 입주물량이 22% 가량 줄어드는데다 집값 불안정의 주범으로 꼽히는 강남권의 경우 재건축 규제로 인해 신규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기 때문이다. “부녀회 집값 담합 등 뚜렷한 개발호재 없이 오름세가 컸던 비강남권이나 수도권 외곽지역의 경우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겠죠. 그래도 진입수요가 꾸준한 강남권이나 신도시, 개발재료가 풍부한 곳은 내년에도 집값 상승이 계속될 거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하반기 대선 정국 진입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라는 게 이 대리의 지적이다. 정당별로 표심을 얻기 위한 개발 정책이 쏟아질 경우 집값 불안정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참여정부가 출범 때부터 집값만은 잡겠다고 공언해왔잖아요. 이번에도 집값 안정을 못 이루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내년 봄 이사철까지 할 수 있는 방안은 모두 내놓지 않을까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꿋꿋이 집값 하락이 대세라고 주장하고 있는 박 대리가 의견을 내놓는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르는데다 투기 수요에 대한 금융규제가 강화되는 것도 투기수요를 잠재우는 데 한몫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 “내년 이후에 신도시 공급 확대까지 가시화되면 강남권 같은 경우야 워낙 딴 세상 얘기니 열외로 치더라도 수도권 집값 안정에는 어느 정도 기여하지 않을까요?”
“강남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가만히 둘의 의견을 듣기만 하던 최 과장이 다시 운을 뗀다. “이번 정부에서 집값 급등의 진원지로 꼽은 게 바로 강남권 재건축 단지잖아. 재건축 아파트값을 잡지 못하면 참여정부의 부동산 대책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이미 재건축에 대한 다양한 규제책이 작동하고 있는 만큼 예전처럼 급등세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이번에도 이 대리의 날카로운 분석이 뒤를 이었다. 올해만 해도 기반시설부담금, 초과이익환수제, 안전진단 강화 등의 규제가 추가된데다 최근에는 재건축 단지 분양가 상한제도 예고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투기수요가 발붙일 소지는 크게 줄었다는 것. “그래도 오름세가 둔화되기만 할 뿐 하락세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대부분의 재건축 단지가 알짜 요지에 자리잡은데다 최근에는 투자자보다 실수요자 위주로 채워진 경향이 강하거든요.”
“내년에는 재건축보다 재개발이 더 인기를 끌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에는 박 대리가 거든다. 내년 상반기 안으로 서울 3차 뉴타운과 도촉지구에 대한 기본계획 발표가 예정돼 있는데다 4차 뉴타운까지 거론되고 있어 재개발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 여기에 올해 1차 뉴타운을 발표한 경기도도 추가 뉴타운 지정을 계획하고 있어 한강조망이 되거나 사업지 규모가 큰 곳, 입지가 뛰어난 곳을 중심으로 투자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박 대리의 2007년도 청사진이다. “아참, 최 과장님 도촉지구나 경기도 뉴타운 지역에서는 6평 이상을 거래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거 알고 계시죠? 단기적으로 투자해서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은 이제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00물산 부동산 고수들의 설전에도 불구하고 내집 마련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 않는 최 과장의 얼굴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기존 아파트 마련이 망설여지면 내년 알짜 분양에 도전해보시는 건 어때요?” 이 대리의 말에 최 과장은 무릎을 탁 치며 반색을 했다. 분양시장의 핵이었던 판교 중소형과 중대형 아파트, 김포신도시, 도촌지구 등 유난히 뜨거웠던 올해 청약열기는 2007년에도 고스란히 이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고분양가 책정으로 분양이 연기된 은평뉴타운은 내년 10월경에 분양될 예정이에요. 도심과 가까운데다 친환경 전원도시로 건설된다니 아껴둔 청약통장을 써보실 만 하죠. 2기 신도시 중에는 파주 운정신도시와 동탄신도시 주상복합이 있고요.” 이밖에도 용인 흥덕지구, 성남 도촌지구, 송도신도시, 용인 신봉·성복지구 등 이 대리의 입에서는 내년 분양 예정지가 끝도 없이 쏟아진다.
“무주택 10년을 꽉 채우신데다 3자녀 세대주에도 해당되시니까 알짜 지역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청약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 대리의 청약 전략에 대한 조언도 이어진다. 내년에는 2008년으로 예정된 청약가점제 도입을 앞두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청약경쟁률이 예상된다는 것. 그러나 최 과장의 경우 청약가점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당첨 확률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만큼 소신 청약을 해도 괜찮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그나저나 내년까지 영종지구에서만 5조 원의 보상금이 풀린다며?” 무르익어 가는 술자리에 최 과장의 부러움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그 돈으로 토지시장도 들썩일 텐데 말이야, 강남 등 블루칩 아파트로 돈이 몰려드는 건 당연지사일 테고 말이야.”
이번에는 박 대리의 전문가 못지 않은 식견이 이어진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전국 9개 혁신도시는 물론이고 영종지구, 김포신도시 등 내년에만 20조 원의 보상금이 풀릴 예정이거든요.” 이러한 천문학적인 보상금이 집값은 물론 대토를 노린 인근 지역 땅값도 크게 상승시킬 것이라는 게 박 대리의 예상이다. “건설교통부나 한국토지공사 등에서 보상금이 투기자본으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부재지주의 경우 1억 원 초과 분에 대해 채권으로 지급하는 채권보상제를 비롯해 현물보상제, 보상금예치제 등의 방안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앞두고 있기는 해요. 그래도 워낙 풀리는 돈이 많아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아무래도 유동자금이 풍부해지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건 막을 수가 없겠죠.” 가만히 듣고 있던 이 대리도 거들고 나섰다. 용인이나 이천 등 전원주택지로 손색없는 곳 등 입지가 뛰어난 수도권 일부 지역이나 개발호재가 뚜렷한 곳을 중심으로 토지시장이 들썩거리지 않겠냐는 것. 반면, 내년부터 부재지주 소유 토지의 경우 양도세가 60% 중과되는 등 세금이 무거워지는 만큼 수도권에서 먼 지역이나 개발호재가 없는 지역 땅값은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내친김에 상가시장에 대한 전망까지 쏟아졌다. “상가시장은 아무래도 내년 경기가 관건이겠지?” 최 과장의 물음에 이 대리와 박 대리는 종목별로 양극화가 뚜렷해질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미 공급과잉 양상을 보이고 있는 테마상가나 복합상가의 경우 올해에 이어 침체를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것. 온라인 쇼핑몰의 증가와 그리 밝지 않은 내년 경기 전망도 상가시장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한다. 반면 단지내 상가에 대해서는 비교적 밝은 전망이 쏟아졌다. 대규모 택지지구 분양이 봇물을 이루는 만큼 안정적인데다 수익성까지 기대할 수 있는 단지내 상가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둘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가는 술자리. 술 기운에 얼굴이 달아오른 최 과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가게를 울린다. “내년에는 서민들도 집값 때문에 서러워할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이야. 암튼 자네들 덕분에 오늘 공부 많이 했네 그려. 내 내년에 집 한 채 마련하면 자네들에게 거하게 한 번 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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