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김홍도)는 전 대학교수 A씨가 "증거물에서 나온 혈흔과 판사의 피가 일치하는지 여부를 밝혀달라"며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을 상대로 낸 석궁사건증거물의 혈흔일치여부 유전자감정거부처분취소 소송에서 각하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A씨는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하자 자신이 재직중이었던 대학교를 상대로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냈지만 1, 2심에서 패소했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 A씨는 항소심 재판장이던 B판사에게 석궁을 쏴 전치 3주의 상해를 가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A씨는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돼 형이 확정됐다.
이후 A씨는 지난해 10월 "국립과학수사연수소의 감정의뢰회보에는 B씨의 옷에서 검출된 혈액이 B씨의 혈액인지 여부가 명확히 기재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대검찰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담당검사는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수감 중인 자에게 더 이상 수사의 필요성이 없어 공람을 종결한다"며 진정사건처분결과를 통지했다.
이에 A씨는 "서울동부지검 담당검사가 '유전자분석을 통해 B씨의 옷에서 검출된 혈액이 B씨의 혈액이라고 입증됐다'는 허위의 내용을 담아 사건을 통지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A씨는 지난해 "교수지위확인 소송과 석궁테러 재판 과정에서 증거가 조작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1억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패소한 바 있다.
【서울=뉴시스】송윤세 기자 = knaty@newsis.com
2007/01/19 17:08
고등학교 때 지리과목을 참 좋아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지리 선생님이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지리는 암기 과목 중 하나였지만 워낙 선생님의 설명이 재미있어 쉽게 잊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리과목 성적도 꽤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리에 흥미를 느껴할 즈음 중간고사에 미처 배우지 않은 부분이 문제로 출제됐습니다. 아직도 그 문제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당시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을 고려했는데 그렇다면 ‘임수(臨水)’ 측면에서 한양의 ‘수(水)’에 해당하는 것은 어느 것일까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객관식 답 중에 ‘한강’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정답은 ‘청계천’이었습니다.
저는 시험이 끝난 후 첫 지리시간에 선생님께 질문했습니다. 일단 배우지 않은 부분에서 시험문제가 출제돼 당혹스러웠다는 것을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뒤이어 왜 ‘청계천’이 한양의 ‘수’에 해당하는지 물었습니다.
또한 저는 선생님께 나름대로 논거를 제시하며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도읍을 정할 때는 백성들의 상수원을 고려해 큰 물줄기를 중심으로 정해왔습니다. 그중 한강은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각각 이 지역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펼쳤을 정도로 상수원적 가치가 컸고 그래서 한강을 중심으로 한 한양은 늘 도읍지로서 손꼽혀왔던 곳입니다. 그에 반해 청계천은 상수원이라기보다는 하수시설에 가깝고 그나마도 장마철 같은 큰 비가 아니고서는 평소에 물길이 말라있는 건천(乾川)이었습니다. 따라서 ‘청계천’을 보고 한양의 배산임수 지형을 살폈다는 교과서 상의 이론은 쉽게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의 주장은 그만 ‘화’를 불렀습니다. 교과서대로 그 내용만 충실히 알기를 원하셨던 선생님의 분노가 폭발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날 그 수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일어선 채로 온갖 선생님의 모욕적인 언사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10~20분후 수업 종은 쳤지만 선생님은 그래도 분이 덜 풀리셨는지 교무실로 따라오라고까지 했습니다. 물론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가봤자 다른 선생님들에게까지 꾸중을 듣게 되는 상황이 뻔히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분노는 그 다음 지리시간에도 이어졌고, 저는 그 해가 다가도록 지리 선생님과는 눈도 마주치질 못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해도 참 씁쓸한 기억입니다. 만일 제가 더욱 정중히 질문했더라면 괜찮았을까요?
며칠 전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석궁에 맞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석궁을 쏜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는 지성인 중의 지성인이라 불리는 전직 명문대 교수였습니다. 교수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현직 판사를 향해 석궁을 쏘아댈 수 있었을까요?
그게 궁금해 여러 언론 보도내용을 종합해보니 사건의 내막은 이러했습니다. 전직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는 지난 1995년 자신이 몸담고 있던 대학의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수험생들이 치른 본고사 답안지를 채점하던 중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학교 측에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곧장 동료 교수들과 학교는 발끈했고 그는 해교행위와 학사질서 문란, 다른 교수 비방 등의 이유로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으며 뒤이어 재임용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법원에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현직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했으면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그럼 다른 곳에서 일하면 되지 뭐’하겠지만 재임용탈락교수라는 꼬리표는 그를 어디도 갈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나 봅니다. 이렇게 그의 억울함은 더해만 갖고 결국 그동안 쌓여온 불만을 석궁에 담아냈던 것입니다.
그의 항소심 재판부 주심을 맡았던 이정렬 판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법원의 판결이 문제가 없었음을 주장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이 판사의 주장에 따르면 재판부도 당시 성균관대에서 벌어진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김 교수 재임용 탈락 타당성의 기준을 크게 '학자적 자질'과 '교육자적 자질'의 두 가지로 나눴는데 이 가운데 학자적 자질은 인정되지만 교육자적 자질을 인정할 수 없어 학교 측 손을 들어줬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근거로 학생들로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의 보도내용에 따르면 재임용에서 탈락될 당시 재학생들은 탈락을 재고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었답니다. 그 탄원서 내용에는 자기들의 교수가 학생들이 요행으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을 제일 경계했으며, 학생들의 비난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교육적인 차원에서 매주 퀴즈형식의 테스트를 치르고 그것을 성적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습니다. 그 과정 중 F학점으로 인해 졸업보류를 걱정한 당시 수학과 졸업 예정자들로부터 강한 불만을 샀고 학교는 이들의 불만만을 근거로 김 교수의 교육자적 자질을 문제 삼았습니다.
뭐 이정도의 배경만으로도 당시에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리고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돼왔는지 대충 짐작이 됩니다. 물론 아직까지 적지 않은 논란이 있습니다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하나는 김 교수가 교수집단이라는 거대한 기득권과 학점에 민감한 학생집단이라는 또 하나의 그룹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기존 질서의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아무리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뼛속까지 그렇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로인해 벌어지는 수많은 오류와 모순을 접할 때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가요?
제가 아는 분 중에 그 누구보다도 교회활동에 적극적인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그의 삶에서 다양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교회 일을 하는데 있어 시야도 넓고 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추진력 또한 뛰어나 한번 계획한 일은 꼭 끝을 보았고 그 결과들도 대부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열정은 늘 교회 장로님들과 부딪혀야 했습니다. 그 부딪힘은 꾸준히 계속돼 생채기로 남았고 결국 그 분은 이제 교회의 주변인으로 맴돌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교회가 좀더 너그럽게 포용했더라면 더 좋은 선한 결과들이 나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왜 그렇게 우리나라 교회의 신학적 사고가 경직돼있고 아직도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느냐면 바로 교회 안의 이러한 분위기에서부터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지금껏 제가 속해있는 사회구조 밖으로 뛰쳐나간 적이 별로 없습니다. 중고등학교때 누구나 한번쯤 해봤다는 일탈도 단 한번 해본 적이 없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언제나 기존 권위에 순응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때론 답답했지만 차마 그 틀을 깰 용기도 없었고 나중에는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그저 그게 편안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보니 제가 속해 있던 틀을 흔드는 모습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항상 모범적인 두발상태과 복장을 유지했던 저로서는 머리를 길게 하고 각종 색으로 물들인 사람이 용납되지 않았고 보충수업시간에 당구장을 드나드는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저도 모르는 사이 이러한 사고방식은 제 삶 곳곳에서 묻어 나왔고 지금껏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제가 교사였다면 엉뚱한 질문을 해대는 학생들에게 면박을 줬을 것이고, 제가 교수였다면 동료교사의 이의제기에 분노를 표출했을 것이며 제가 장로였다면 나보다 뛰어나 잘난척하는 집사를 용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안학교 교사를 꿈꾸는 저에게 늘 아내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며 타박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은 달라지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틀림과 다름’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불편하고 쉽진 않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 제가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돌을 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노력은 꾸준히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무조건 틀리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향해 문을 닫기보다는 나와 조금 다른 것뿐이라는 생각으로 상대와 생각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래야 대화가 가능하고 그래야 제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고정관념도 수정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저에게 ‘성숙’이라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제 삶에 있어서 앞서 언급한 석궁테러나 그 이전의 여러 일들에서 느꼈던 아쉬움도 줄어들 것이란 생각입니다. 이미 이러한 노력들은 기존의 틀 안에 갇혀있던 제 사고를 상당히 자유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참 좋습니다.
지금 이 순간 최고의 지성이라는 전직 교수가 석궁을 들지 않을 수 없도록 미치게 만들었던 기존사회 구조의 거대한 장벽들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문득 불합리한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셨던 예수님의 발자취도 머릿속에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고요하게 묵상을 해봅니다. (류양희)
[출처] 석궁 테러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작성자 말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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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궁테러의 진실☞ http://blog.daum.net/omyblog/17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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