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는 칼보다 강하다

 

 

[엑설런스 코리아]   2006년 11월 30일 17시 15분

≪세 치 혀로 세상을 주무르네≫. 한 출판사에서 펴낸 ‘어린이용 사기(史記)’ 시리즈의 제목이다.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핵심인 정치에서 말과 혀의 중요성은 일찍이 간파돼왔다. 기업 경영에서도 ‘세 치 혀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기업이 10% 원가절감을 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단 한번의 협상으로 그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해봅시다. 연봉은 업계 최고로 대우합니다. 세 달간 일을 해본 후 정식직원 채용 여부를 판단합니다.”
“조건이 있는데요.”
“수습기간 때문이라면 모든 직원이 이렇게 선발된다는 점에서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말씀 다 끝나셨나요?”
“때문에 경력이 있으시지만 김삼순 씨 역시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 전에 조건이 있다고 했잖아요! 제 이름을 ‘김삼순’이 아닌 ‘김희진’으로 다른 직원들께 소개해주세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연봉협상 과정은 협상자의 ‘센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돈이나 직위보다는 삶의 질과 인간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근로자 삼순과 인사관리 센스가 전혀 없는 사장 진헌은 사사건건 부딪치며 갈등을 일으킨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장 진헌은 이후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일로 연봉 10~15% 인상, 수습과정 없이 정규직원 채용 등 파격적인 근로조건을 내걸어야만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예에서 보듯, 비즈니스 협상에서 관건은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해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최악의 경우 자신의 의중을 들켜버렸을 때, 협상은 예외 없이 난공불락의 상태가 되고 만다. 어찌 보면 간단한 ‘협상의 기술’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협상 결과는 비교 샘플 없다

이에 대해 세계경영연구원(IGM) 전성철 이사장은 “협상은 가장 늦게 발전한 과학에 속한다”고 말한다.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조차 협상은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미국 대부분의 비즈니스 스쿨과 로스쿨에 협상 강좌가 없었다. 한국에는 지금도 협상 과정을 개설한 대학이 거의 없다.

협상기술을 발전시키고 교육하기 힘든 이유는 협상력이 발휘되는 상황이 특수하기 때문이다. 또한 협상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그 결과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측량하기가 매우 어렵다. 전 이사장은 “예를 들어 용접을 하고 나면 비교 샘플이 있기 때문에 그 용접이 잘됐는지 잘못됐는지 비교적 쉽게 판별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협상에는 99.9% 비교 샘플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 세상의 어떤 협상도 똑같은 경우가 없다는 것이 사람들이 협상을 어렵게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상대가 다르고 상대의 대응이 다르고, 토의 순서와 대화하는 방법이 다르므로 자연히 얻는 것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협상을 하고 나면 그 협상이 과연 그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였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외국은 10년 이상 같은 협상가 이용

따라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협상의 결과를 타고난 복으로 받아들인다. 담당자가 아무리 협상을 잘못하고 오더라도 그럴듯한 상황 논리와 변명을 들이대면 그에 대해 반박할 수가 없다. 시비를 따질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협상 결과를 분복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협상 교육을 통해 협상 결과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협상에 특별한 관심을 갖거나 교육에 대해 투자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30~40년 전 선진국들의 모습이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최근에 변화가 찾아왔다. 경영혁신을 통해 원가절감 10%를 달성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단 한번의 협상으로도 이에 못지않은 성과를 내는 기업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숙련된 변호사나 컨설턴트로서 협상의 전 과정을 수없이 지켜본 사람들이 협상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간에는 그 결과에 엄청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기업은 협상 결과를 더 이상 분복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 동시에 협상이 과학이라는 사실도 인식하게 됐다. 즉, 협상은 교육에 의해 그 기술을 높일 수 있고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선진국의 비즈니스 스쿨에 설치된 협상전문 과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외국의 경우 오랜 기간 경험을 통해 숙련된 기술을 갖춘 협상가가 협상을 담당한다. 항공산업의 경우 10년 이상 같은 협상가가 협상을 하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매번 협상 담당자가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되면 전문적인 지식도 부족할뿐더러 매번 다른 상황, 다른 기업을 상대로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의 협상력은 늘지 않고 어렵게 번 외화를 협상 한 번으로 날려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뛰어난 협상가가 되려면

최근 국내에서도 협상가 과정 교육이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비즈니스 협상의 대표적인 사례를 연구하고 모의협상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커리큘럼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협상의 조건이 시기와 시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해볼수록 협상기술이 향상된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일반적인 협상의 기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대방이 반드시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모든 협상에는 반드시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 있다. 이를 얻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협상 결렬로 이어지고, 서로 양보해 타협을 본다 할지라도 실행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절대적 욕구를 파악해 이를 충족시켜주는 방법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협상자가 앞서 말한 삼순이처럼 ‘나를 희진으로 불러 달라’며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사전준비 과정에서 상대방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려는 체계적인 탐색작업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절대 양보 불가’ 의제를 파악하는 준비는 협상의 결렬을 피하고 쌍방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내게 만드는 첫 번째 작업이다. 설령 헤어진 애인의 이름이 ‘희진’일지라도 근로자의 요구조건이 ‘희진으로 불리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성공적인 협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둘째, 양보시기를 적절하게 조절하라.

상대방의 필수 욕구를 파악한 후 상대방이 이겼다는 느낌을 더 크게 갖도록 만드는 방법은 그 요구를 수용하는 시기에 달려 있다. 협상 초기 단계에서 너무 쉽게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면 양보의 값어치를 떨어뜨리게 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FTA협상에서 스크린 쿼터 축소를 포함한 4대 선결조건을 협상 개시 전에 들어준 것은 우리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했을 만큼 전략적이지 못했다. 조건의 수용 자체를 떠나 충분히 시간을 끌어 우리측의 다른 요구조건과 맞바꿔도 좋을 조건들을 초반에 들어줌으로써 우리의 의지를 너무 쉽게 노출시켰다는 비판이 쏟아졌던 것이다. 쉬운 것을 성취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에 비해 어려운 것을 성취한 사람의 만족감이 더 큰 법이다. 상대방에게 중요한 것일수록,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양보 시기를 뒤로 미루는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당신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게 하라.

나와 상대방이 동시에 이득을 보는 ‘윈윈전략’이 가장 이상적인 협상방법이지만, 임금협상이나 가격협상은 상대방의 손해가 나의 이득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때 ‘무조건 가격을 깎아 달라’는 것은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뿐더러 갈등을 크게 만들 공산이 크다. 이때는 ‘가격을 깎아주면 종업원들의 사기가 떨어져 제대로 된 상품이 생산되지 못하고 이는 결국 당신네 생산비용을 증가시킨다’는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협상은 토론을 통한 논리 싸움이다. 치밀한 준비와 대응으로 이번 협상이 당신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임을 확인시켜야 한다.


넷째, 선심 쓰듯 양보하라. 양보 후에는 요구하라.

흔히 협상의 귀재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설처럼 말하는 인물이 있다. 고려시대 거란과의 전쟁에서 서희의 외교 담판이 그것이다. 고려 성종 때 만주에서 세력을 키운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로 쳐들어왔다. 사실 거란의 고려 침공은 송나라를 정벌해 광대한 중국대륙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송을 치기 위해 출병했다가 친송정책을 표방하고 있던 고려가 배후에서 기습하면 뒤통수를 맞는 격이 된다. 거란은 이런 후환을 없애기 위해 고려를 먼저 제압하고자 했던 것이다. 거란의 의중을 꿰뚫어본 서희는 거란과의 외교 담판에서 선심 쓰듯 ‘송나라와 동맹을 단절하겠다’는 협상 카드를 내놓았다. 그리고 ‘양보’의 조건으로 강동 6주를 되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전쟁을 막고 영토를 되찾았음은 물론이다.


다섯째, 상대방의 협상력을 칭찬하라.

“사장님은 정말 타고난 협상가입니다. 이렇게 힘든 협상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마무리 칭찬 한마디가 상대방의 만족감을 배가시킬 수 있다. 언제나 상대방의 협상력을 칭찬하고 참으로 어려웠던 협상이라는 말로 상대방의 만족감을 키워주는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하자.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

결국 협상은 ‘대화의 기술’이다. 외국기업과의 거래나 노사 협의 등 거창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매일 협상을 경험하고 있다. 카터·레이건 정부에서 테러리스트 협상 자문을 담당한 허브 코헨은 “세상사 8할이 협상”이라고 말한다.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 조직에서 상사와 부하를 설득하는 것 역시 협상의 한 종류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협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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