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마저 아낌없이 주고 떠난 '토스트 할머니'

 

 

“당신께서 만들어 주신 토스트와 잔잔한 미소와 따뜻한 말씀 한마디 한마디…. 마음에 간직하겠습니다. (저 세상에서) 행복하세요.”(ID·피오)

17일 성균관대학교 인터넷 커뮤니티 ‘성대사랑’ 자유게시판에는 ‘▶◀(온라인에서 조의·弔意를 나타내는 이모티콘)’이 표시된 글들이 올라왔다. 성균관대 정문 앞 포장마차에서 15년간 학생들에게 토스트를 팔았던 ‘토스트 할머니’ 조화순(77)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들이 올린 추모 글들이었다. ‘총과장미’란 ID의 학생은 “토스트를 사 먹을 때마다 고운 미소로 대해 주시던 모습이, 작은 몸으로 무거운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던 뒷모습과 겹쳐 눈이 시큰해진다”고 했다.





이날 성균관대 총학생회는 ‘성균관대는 토스트 할머니를 기억합니다’라고 쓰인 휴대전화 액정 클리너(액정 닦는 소재)를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중앙도서관 앞에서 학생들에게 판매해 수익금을 고아원과 양로원에 전액 기탁하기로 했다.

조 할머니는 1980년까지만 해도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토목상가를 운영하며 부족함 없이 생활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퇴직 후 차린 정수기 수입 회사가 잘 되질 않으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파출부 생활을 했다. 그렇게 12년을 살았고, 92년 어느날 딸이 쓰러졌다. 뇌종양이었다. 파출부 벌이로는 딸의 치료비를 댈 수 없었다. 조 할머니가 성대 앞에 토스트 가게를 차린 것이 그해 10월 말이었다.

버는 돈은 많아야 한 달에 100만원. 지하방 집세로 30만원을 내고 딸 치료비로 50만원을 쓰고, 남는 돈으로 빠듯하게 생활했다. 딸 박운자(여·37)씨는 “겨울에 찾아갔더니 보일러를 틀지 않은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 혼자서 컵라면을 끓여 먹고 계셨다”면서 “그날 엄마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말했다.

힘든 생활이었지만 할머니는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에겐 두 배 크기의 ‘토스트 곱빼기’를 만들어줬다.

지난해 9월, 할머니는 갑자기 쓰러졌다. 담낭암이었다. 이미 간까지 암세포가 퍼져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다. 병원에서 입원을 권유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거부하고 서울을 떠나 청주 꽃마을(장기 요양시설)에서 죽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넉 달도 안 돼 할머니는 다시 성대 앞으로 돌아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카페 ‘모리’ 사장에게 “카페에서 학생들에게 토스트를 만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는 딸의 만류로 다시 청주로 내려왔다.

지난 14일, 장례식을 마친 할머니의 시신(屍身)은 가톨릭대 병원에 기증됐다. “내 몸뚱아리(장기·臟器)를 필요한 학생들에게 쓰이도록 기증하라”는 할머니의 유언에 따른 것이었다.

딸이 전한 할머니의 유언에는 이런 글도 있었다. “너희도 시신을 기증했으면 좋겠다고. 대신 교통 사고는 당하지 말라고. 병으로 죽으면 쓸 수 있지만 사고 나 몸이 망가지면 기증해도 쓸 수가 없다고.”



[김우성 기자 raharu@chosun.com ]

<모바일로 보는 조선일보 속보 305+NATE, 305+magicⓝ(>http://mobile.chosun.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