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쨌든 일련의 이야기들은 모두 영화 '삼국지: 용의 부활'을 보고 나서 필 받아 쓰는 겁니다. 영화리뷰는 삼국지를 무시한 용의 부활은 유죄? http://blog.joins.com/fivecard/9396362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삼국지 안 읽어 보신 분은 없겠죠. 그럼 '신기한 삼국지 파생상품'은 얼마나 보셨습니까? 이렇게 얘기하면 뭐 얘긴가 다양한 생각들이 오가시겠죠. 만화 얘기는 저번에 했으니 아닐거고, 다양한 번역본 얘긴가... 하시 분도 있을테고, 사실 번역본들은 대개 거기서 거기죠. 요시가와 에이지처럼 아예 앞부분을 새로 고쳐 써서 유비의 로맨스까지 만들어 넣는 수준 정도가 아니면 큰 편차는 없었습니다. 하긴 좀 특이한 판본으로는 정말 속이 배배꼬인 진순신 판도 있군요. 조조 중심주의도 좋지만 이건 좀... 하기야 이런 요상한 작품을 '민중주의적 시각'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운 황석영씨야말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구질서의 옹호라는 면에서는 유비가 보수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대로 대지주 호족 출신인 조조와 그야말로 돗자리 장수를 하던 기층 유비 중에서 과연 누가 더 민초들의 심정에 가까운 사람일까요? 뭐 이건 잠시 딴 소리였고, 아무튼 다양한 판본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혹시 '반삼국지'와 '후삼국지'도 보셨습니까? ![]() 두 작품 사이엔 공통점이 있죠. 본래 삼국지연의의 시각은 '유비 만세'지만 이런 시각이 본래 고전적인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수가 쓴 역사책 '삼국지'와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 사이의 차이를 지적하면서 연의가 정사를 왜곡했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정사 또한 왜곡의 여지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진수가 정사(正史) 삼국지를 집필한 것은 진(晋) 나라때. 진수가 모시고 있던 진나라 황제 사마씨가 위나라의 신하였으니, 진수는 조조의 위나라를 정통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가 정통이면 촉과 오는 난적의 무리일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수는 유비와 유선에 대해서는 선주(先主)와 후주라는 식으로 최소한의 예의를 취했습니다. 여기엔 여러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죠. 본래 촉한 땅이 고향인 진수의 고향에 대한 고개 숙임일 수도, 혹은 한조의 계승 명분을 밝힌 유비를 차마 역적으로 규정할 수 없었던 유학자로서의 양심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 아무튼 진수의 삼국지는 위가 정통으로 되어 있고, 이것이 역사를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비록 과거의 일이라 해도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역사는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은 남송 시대에 가서 증명됩니다. 아시다시피 남송은 오대십국의 난을 정리하고 중원을 통일했던 송이 정강의 변 이후 새로 일어난 여진족의 금나라에 중원을 내주고 장강 이남으로 달아나 세운 나라입니다. 당연히 남송의 국시는 '북진통일' '고토회복'일 수밖에 없죠. 그리고 이 시기의 지식인들은 북벌을 위한 이념 홍보에 골몰합니다. 이때 이들의 눈에 띈 역사가 있죠. 세상이 적도들로 들끓는 세상, 궁벽하지만 남쪽에서 왕조의 꿈을 잇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북벌에 대한 뜨거운 꿈... 그렇습니다. 이들은 유-관-장 삼형제와 제갈공명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본 겁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이 영웅이 되어야 했죠. ![]() 북방의 이민족 왕조(금, 원)에 맞서는 한족의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데에도 촉한정통론은 여러 모로 유용합니다. 삼국을 통일한 진은 어설프게 북방 기마민족에 대한 유화책을 쓰다가 결국 5호16국의 난세를 맞고 강남으로 달아나게 되죠. '만약 우리의 촉한 영웅들이 중원을 통일했다면 그렇게 허술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이야기꾼들이 등장합니다. 아무튼 진수의 '삼국지'에서 나관중의 '삼국연의' 사이에는 거의 천년 가까운 시간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역사를 보는 시각의 변화가 있습니다. 당연히 '삼국연의'의 주 독자들인 중국 민중들은 충의지사들이 한데 뭉쳐 절의를 지키다가 간사한 적들에게 무너져 분루를 삼키는 이야기를 더욱 좋아했습니다. 한족 황조의 세뇌작업(^^)이 먹혀든 셈이죠. 그리고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영웅관에는 아무래도 유비 쪽이 어울립니다. 환관의 양자 출신으로 어린 나이부터 버릇없는 부잣집 귀공자 출신 깡패였던 조조, 비록 야만스러운 강남(!)이긴 하지만 당당한 제후의 가문인 손씨네보다는 형편없는 시골 양아치(^^) 출신인 세 명의 의형제 쪽이 더욱 친근감이 가는 타입이죠. 게다가 유비의 조상이라는 한 고조 유방 역시 동네 건달 형님 출신, 그리고 나중에 명을 건국한 주원장 역시 한때 머리를 깎고 중 노릇까지 했던 한미한 집안 출신입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고 외쳤던 진승과 오광 이후로 언제나 황토바람 부는 중국 민중에게는 '나도 어쩌면 황제가 될 수 있다'는 꿈이 있었을 겁니다(물론 모택동 선생도 이런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영웅이죠). 그런 환타지에 부합하는 영웅은 어디까지나 유비 쪽이지, 조조나 손권이 아닙니다. ![]() 민심은 유비 쪽이었다는 증거는 사방에 퍼져 있는 관제묘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약 유비 집단이 형편없는 무뢰배들이라고 생각했다면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 온 중국에 퍼져 있을 이유가 없겠죠. ![]() (이분이 바로 진순신.) 결론적으로 말해 삼국지, 혹은 삼국연의가 소설로서 성공하려면 거기에는 유비 정통론 이외의 선택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약간의 반발심을 끼워 넣어 조조 중심으로 소설 삼국지를 다시 쓰려고 했던 시도들은 작가의 치기와 비틀린 공명심을 드러낼 뿐입니다. 대표적인 졸작은 위에서도 기술했던 진순신판 삼국지입니다. 물론 창작의 자유는 존중되어야겠죠. 하지만 원균을 중심으로 한 임진왜란 소설을 써서 성공을 바라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게 자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직 본론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사설이 너무 길었군요. 본래 이 글을 쓴 건 후삼국지와 반삼국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던 거였는데, 기초공사 하다가 엄청나게 길어져 버렸습니다. 아무튼 본래 하려던 얘기는 다음 편으로 연결하겠습니다.^^ 삼국지를 무시한 용의 부활은 유죄? http://blog.joins.com/fivecard/9396362 만화가 된 삼국지들 http://blog.joins.com/fivecard/9401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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